美 IT업계 맹렬 "우먼 파워"

 칼리 피오리나·멕 휘트먼·킴 폴레이지·엘렌 핸콕의 공통점은 모두 정보기술(IT)업계의 최고경영자(CEO)란 점이다.

 이들이 여성에게 여전히 보수적인 미국 IT업계에서 CEO를 맡게 된 것은 탁월한 경영능력과 타고난 사업수완에서였다.

 최근 휴렛패커드(HP)의 CEO로 발탁돼 IT업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피오리나는 98년 미국에서 영향력 1위의 여성기업가로 선정되는 등 지난해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아온 여성이다.

 그녀가 HP의 CEO로 선임됐다는 이유만으로 당일 뉴욕 증시에서 HP의 주가가 1.9% 상승해 그녀는 업무를 수행하기도 전에 HP의 주가를 끌어 올렸다. 반면 루슨트의 주가는 2% 하락했다.

 HP가 여성을 CEO로 선임한 것은 그녀의 탁월한 경영능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피오리나는 지난 20년간 AT&T에서 경력을 키워 왔으며 지난 3년동안은 통신업체 루슨트에서 200억달러의 매출액을 올리고 있는 글로벌 서비스부문을 이끌어 왔다.

 그녀는 지난 96년 루슨트가 미국의 수정통신법에 의해 AT&T로부터 분리·독립할 당시, 루슨트의 기업이미지 작업 및 경영전략 수립 등에서 탁월한 업무능력을 발휘해 루슨트를 현재 통신장비 최대 업체로 만들었다.

 피오리나는 또 루슨트가 통신장비업체 이미지에서 탈피해 음성·데이터 통합이 가속화되고 있는 네트워크 시장에 진입하는데 일조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루슨트 관계자들은 그녀가 현 루슨트의 리처드 맥긴 CEO 뒤를 이을 만한 재원이었다고 그녀를 치켜세우고 루슨트가 HP에 유능한 CEO를 빼앗겼다며 그녀를 아쉬워했다.

 그녀는 HP CEO를 수락하면서 HP를 인터넷 시대에 맞는 유연한 회사로 탈바꿈시킬 계획이라고 말하고 조직에 속도감과 경쟁의지를 불어넣겠다고 밝혔다.

 최근 들어 인터넷비즈니스에서 경쟁사인 IBM에 뒤처지고 있는 HP는 그녀로 인해 강한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현재 전자상거래(EC) 부문에서 두드러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이베이의 CEO 멕 휘트먼도 여성 CEO로 주목받고 있는 인물.

 지난 4월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주요 기업의 CEO가 보유한 주식을 시가총액으로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휘트먼은 이베이의 714만 주식에 관한 옵션권을 보유, 보유 주식의 시가총액이 12억달러에 달해 MS의 빌 게이츠 회장과 더불어 억만장자 대열에 당당히 입성했다.

 지난해 이베이 CEO로 선임된 휘트먼은 이베이에 골동품·컴퓨터·동전·책·음반·도자기·사진·보석 등 100만가지가 넘는 품목을 갖춰 놓는 등 경매품목을 다양화해 경매사업에 경쟁력을 불어넣었다.

 또 그녀는 양방향 서비스를 지원하는 등 자사 사이트 이용자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휘트먼의 이같은 사업수완으로 지난 6월 미국 경제주간지 「뉴스위크」는 수익성과 안정성 면에서 가장 뛰어난 EC업체로 이베이를 선정했다.

 이베이를 인터넷업체 중 몇 안 되는 흑자 업체로 탈바꿈시켜 놓은 그녀의 경영능력은 주식시장에서도 평가받았다. 인터넷 관련주들이 사상 최대로 폭락했던 지난 4월 당시, 경쟁사인 아마존의 주가는 주당 100달러 가량 폭락한 데 반해 이베이는 같은 기간 20달러 내외 하락하는데 그쳤다.

 마림바의 킴 폴레이지도 IT업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여성 CEO다.

 워싱턴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폴레이지는 89년 선 마이크로시스템스에 입사, 자바의 컴퓨터칩 제어 프로그래밍 언어를 개발하는 「오크(Oak)」 프로젝트 매니저로 근무했다.

 지난 96년에는 동료 4명과 함께 선을 나와 카페 이름을 본떠 만든 마림바를 설립했고 97년 푸시기술을 자바로 구현한 「캐스트넷」이란 소프트웨어(SW)를 발표, 일약 IT업계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캐스트넷은 인터넷상에서 여러 채널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SW로 HP·오라클·인텔·애플·AT&T 등 50여개의 정보통신업체들도 현재 마림바의 캐스트넷을 활용하고 있다.

 그녀도 지난 97년 미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하는 「97년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인 25인」 중에 당당히 들었고 최근에는 리눅스 기반의 캐스트넷을 발표하는 등 맹렬히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97년 애플의 수석부사장직을 사퇴한 엘렌 핸콕도 지난해 웹호스팅 업체 엑서더스 커뮤니케이션스의 CEO를 맡으면서 다시 IT업계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핸콕은 엑서더스 CEO로 선임되면서 『엑서더스를 급변하는 인터넷 사업에서 발빠르게 대응하는 업체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 말을 통해 그녀가 IBM과 내셔널 세미컨덕터 등 대기업에서 근무할 당시 수많은 자료와 데이터를 통한 의사결정으로 사업 추진에 상당한 시간을 허비하게 된 전철을 밟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그녀의 말처럼 엑서더스는 웹호스팅 사업에 발빠르게 대응, 핫메일·라이코스·지오시티스 등 주요 인터넷업체를 고객으로 확보했다.

 핸콕의 이같은 경영전략으로 자신이 부임하기 전 20달러에 맴돌던 엑서더스의 주가를 최근 120달러대로 높였다.

 최근에는 골드만삭스·내셔널뱅크 등 주요 투자업체들이 엑서더스 주식에 대해 잇따라 매수 추천을 내는 등 그녀의 경영능력은 주가를 통해 평가받고 있다.

 칼리 피오리나·멕 휘트먼·킴 폴레이지·엘렌 핸콕 등 이들 여성 CEO에게는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말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혁준기자 hjjo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