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모두 이렇게 아홉 가지를, 사서삼경이 들어 있는 동양사상 전집 한 질을 주문하시면 모두 증정합니다. 창고의 재고도서를 정리하기 위해 취한 특별 배려니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그리고 지금 돈을 내라는 것이 아니고, 여기 카드에 사인만 하시면 배달해 드리겠습니다. 책을 확인하고 받으신 후에 1만2000원을 내시고, 그후 매달 아홉 달간 1만2000원씩 월부로 내시면 됩니다.』
방태산이 왔다갔다 하면서 카드를 보여 주었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버스가 하숙집이 있는 정류소에 도착해서 나는 그에게 다음에 보자고 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 그도 따라서 내렸다.
『형, 그렇게 싸게 팔아서 뭐가 남지요?』
내가 불안스럽게 묻자 그는 어깨를 들썩이고 말했다.
『그래도 남으니까 팔지. 시팔새끼들, 공짜로 주어도 안 읽을 놈들에게 사라니 말도 안되지.』
그는 떠나가는 버스를 흘겨보면서 중얼거렸다.
『형, 아주 청산유수 같이 말을 잘하던데 언제 그렇게 배웠소?』
『먹물깨나 먹은 친구에게 써 달라고 해서 외웠지. 다른 외판원들도 외워서 하지. 너도 직장 모가지 되면 나한테 와서 외판이나 해라.』
그때 헤어지고 방태산을 본 일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사무실이 텅 비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반으로 나눠서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외판원들은 아침과 저녁에 한꺼번에 몰릴 뿐이지 사무실을 거의 사용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방태산에게 전화를 해서 만나자고 했던 것이다.
그의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한양 교양서적 출판공사 비서실입니다』라고 말하는 여직원과 사장 방태산만이 앉아 있었다. 나는 방태산에게 회사를 그만 두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모가지 되면 오라고 했잖니. 당장 와서 책을 팔아 봐라. 자기가 하기에 따라 수입이 괜찮다.』
『회사를 그만 둔 것은 독립해서 컴퓨터 일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가게가 필요해요. 형이 쓰는 가게를 나눠서 같이 쓰면 안될까?』
『외판원들이 출입하는 우리 사무실이 좀 시끄러울 텐데?』
『아침저녁으로 그렇다면서? 우린 밤에 주로 사용할 거야. 그리고 칸막이를 해서 구분하고, 월세의 반은 내가 낼게. 관리비도 반 내고.』
월세와 관리비를 반분하겠다고 하자 방태산은 표정이 밝아지면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렇게 되어 사무실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