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223)

 그녀의 말이 타당하기는 했지만, 나를 찾는 전화에 비서실 운운하면 받는 사람들이 나를 희극적인 인물로 생각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와 같이 과장된 모습은 진실성을 흐려 놓을 수가 있었고, 신뢰도를 약화시키기 때문이었다. 끝까지 그런 칭호를 사용하겠다면 나는 전화기를 따로 놓아야 할 형편이었다. 그러나 방태산이 눈치를 채고 그 칭호를 철회하는 데 동의했다.

 『성양(그녀의 별명이 성냥공장이었는데, 그것은 성만을 부르면 발음이 그렇게 되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비서실이라는 말을 빼요.』

 『그럼 뭐라고 해요?』

 『한양교양서적이라면 최 사장의 회사에 걸려온 전화가 문제되니까 그냥 「여보세요」라고 하든지, 「종로 5가입니다」라고 하든지.』

 『잘 생각하셨습니다. 형, 사실 책 외판사라 할지라도 비서실 운운하면서 과장된 허상을 보이면 신뢰도가 없어요. 지금 사람들이 얼마나 약은데 그런 말에 안 속아 넘어 갑니다. 큰 회사가 아닌데 비서실 운운하면서 거드름을 피우면 일단 사이비로 봅니다.』

 『그렇지만 말이야. 한양교양서적 출판공사 비서실이라고 하면 대단히 큰 출판사로 알아. 그것은 효과를 내기도 하지.』

 『그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불신을 줄 것입니다.』

 나는 기업을 운영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을 신용으로 생각하였다. 평생을 기업에 투신할 것이라면 지금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투명하고 정직하게 운영해야 한다고 믿었다. 칸막이 합판 공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한용운이 들어섰다. 그는 몸집이 뚱뚱하고 도수가 높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비만한 그의 몸집을 보자 문뜩 동양컴퓨터산업사 최 사장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최 사장은 숨을 쉴 때도 신음소리를 낼 만큼 비만했으며, 끝내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아무리 비만해도 젊기 때문인지 한용운은 호흡하면서 신음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그와 마주 앉았다.

 『벤처 창업을 하려고 하는데 참여할 뜻이 있습니까?』

 내가 던진 첫 질문이다. 그는 안경다리를 한번 만지고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

 『저는 큰 회사보다 벤처기업이 더 좋습니다. 같이 키워본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첫 대답은 나의 마음에 들었다. 나는 그 순간 그를 고용할 결심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