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초저가 PC 보급

 오는 10월부터 100만원 이하의 초저가 PC가 대량 공급될 전망이다.

 정보통신부가 계층간·지역간 정보격차 문제를 해소하고 인터넷과 정보의 보편적 서비스를 적극 확산한다는 목적으로 초저가 멀티미디어 PC를 대량 보급키로 했기 때문이다.

 정통부는 특히 농어촌지역과 서민들을 위해 컴퓨터구입 적금제도를 도입, 2회 이상 적금을 불입한 가입자에 대해서는 컴퓨터를 우선적으로 설치해 주는 한편 전국 3600여 우체국을 통한 개인용 소프트웨어(SW) 판매와, 현재 1만원 수준인 PC통신과 인터넷 가입비 및 기본이용료의 면제 등 저가 PC의 보급확산을 위해 다각적인 대책을 강구키로 했는데 이는 「국내 정보화 기반 확산」을 위한 파격적인 조치로서 PC 보급률 제고에도 상당히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정책이 정부가 의도한 만큼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선 속단하기 어렵다. 그것은 정부가 공급하겠다고 밝힌 PC 가격이 제조원가 수준에 불과하고 시장원리에 반하는 등 간과할 수 없는 여러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유로운 시장질서에 의해 형성돼야 할 PC 가격 및 사양을 정부가 획일적으로 정함으로써 기존 시장질서를 크게 문란시키면서 자율적인 기술개발 노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정통부가 이번에 제시한 PC 가격은 동급 수준의 사양을 갖춘 PC가 현재 130만∼150만원을 형성하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30만∼50만원의 가격차를 보이고 있다. 정통부는 초저가 PC 공급이 본격화할 오는 10월쯤에 PC 가격이 현재보다 하락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현재의 시장상황으로 보아 하락분은 10만원 미만이 될 전망이다. 따라서 초저가 PC 공급이 본격화하면 이에 참여한 PC제조업체는 대당 20만∼30만원의 영업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또 이같은 현상은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는 기존 PC대리점들이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사태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특히 앞으로 우체국을 통한 제품판매가 본격화할 경우 기존 PC대리점체제의 약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문제다. 이는 대리점체제를 통해 성장해온 PC업계가 생명선인 대리점망을 스스로 파괴하는 모순에 직면케 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자칫 PC업계와 대리점 간의 불화와 불신으로 비화할 소지도 있다.

 이뿐만 아니다. 저가격을 무기로 시장기반을 형성하고 있는 용산상가와 조립PC업체들의 경우 앞으로 초저가 PC가 본격 공급될 경우 그 기반을 완전히 상실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용산 등 일부 상가업체들과 조립PC업체들은 이달중에 「정부의 초저가 PC 공급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를 계획하는 등 벌써부터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당장 PC제조업체들이 받을 타격이 예상외로 크며 이에 대한 보상책이 없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주요 PC제조업체들이 정통부가 초저가 PC 공급계획을 발표한 이후 현재까지 적극적인 참여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PC제조업체들은 정부 정책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당장 미운털이 박힐 것을 우려, 반대의사를 분명하게 표명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마진이 거의 없는 사업에 적극 참여할 의사를 밝히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입장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통부는 최근 PC제조업체들의 이같은 반발을 의식해서인지 당초 80만원으로 책정했던 초저가 PC 공급가격을 100만원선으로 상향조정한 데 이어 초저가 PC 공급과 관련, PC업계의 자유로운 참가의사를 존중한다고 밝히는 등 나름대로 신경을 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의 과도한 개입으로 많은 오해가 발생하고 있으며 이같은 오해는 쉽게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통부는 자유로운 시장원리를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마련된 정책만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관련업계의 지적을 겸허한 자세로 수용하길 바란다. 이번 초저가 PC 공급정책이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탁상행정의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아서는 안될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