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228)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알려진 청계천 세운상가에서 외국 제품의 복제와 모방이 범람한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것이 모방된 것만은 아니었다. 새롭고도 창의적인 프로그램이 개발되기도 하였다. 도스 운용체계였던 당시 프로그램 언어인 베이식으로 각종 소프트웨어가 개발되어 소비자들에게 팔렸다. 그 중에 내가 개발한 것은 교사들의 성적 배분 프로그램이었다. 전에는 학생들의 성적을 교사가 직접 기록하고 그것을 배분하여 석차를 내는 원시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다만 전자계산기가 널리 보급되면서 겨우 성적 평균치를 계산하는 데 전자계산기를 사용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내가 개발한 성적 배분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자동으로 평균치가 나오고, 전체 석차를 자동으로 배분해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성적 배분 프로그램은 교사의 업무 폭주를 막아주는 것이 되었다. 나는 그것을 각 학교에 팔았다. 그런데 그와 같은 프로그램을 사용하려면 먼저 컴퓨터를 아는 교사가 있어야 하고, 학교에 컴퓨터가 구비되어 있어야 했다. 그런데 모든 학교에 컴퓨터가 구비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의 중·고등학교나 초등학교에 컴퓨터를 아는 교사가 없었다. 각 학교에 프로그램을 보급하려면 먼저 컴퓨터를 보급해야 했고, 컴퓨터를 보급하려면 먼저 컴퓨터를 아는 교사를 양성해야 했다.

 정부에서 교육용 컴퓨터 5000대를 만들어 보급했지만, 그 전부가 학교로 간 것도 아니고, 보급을 받은 학교조차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나는 컴퓨터가 있는 학교 일부에 그 프로그램을 팔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소프트웨어는 부수적인 것이었다. 그것이 사업의 주체가 되지 못한 것은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이 확산되지 않아 사업성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기술 개발도 그것의 사업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장 자동화 시스템의 대중화 문제도 공장에서 일단 컴퓨터를 설치해야 하는 점이 있다. 그러나 공장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컴퓨터를 구매하여 가동시킬 수 있었고, 그것이 부담이 되지 않았다. 학교에 성적 배분 프로그램을 팔면서 컴퓨터를 사도록 권하기도 했지만, 학교 당국은 컴퓨터 매입에 대해서 부담을 갖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공장에서는 입장이 달랐다. 한두 사람의 인건비를 절약하는 것으로 컴퓨터를 구매할 수 있었고, 소프트웨어를 설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공장 자동화가 발전되면 많은 실직자가 발생할 것을 우려했지만, 실제에 있어 생산성의 문제였다. 그 남는 노동력을 다른 일에 투입함으로써 생산성이 향상될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