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부가 민간부문의 암호사용을 촉진하기 위해 당초 이달중 입법예고를 거쳐 오는 10월 정기국회에 상정, 내년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 암호이용촉진법(가칭) 제정 추진계획이 최근 뚜렷한 이유없이 중단된 것은 유감이다.
특히 암호이용촉진법은 정통부가 관련부처와 갈등을 빚으면서까지 관철시키고자 애를 쓴 사안인데다 최근에는 관련부처에서도 이의 필요성을 인정, 의견을 같이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이의 제정 추진을 중단한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통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암호이용촉진법 제정이 시민단체 등의 거센 반발이 예상되고 있고 또 암호문제가 아직은 여론의 관심영역에서 다소 벗어나 있는 상황인데 굳이 공론화를 통해 부담을 초래할 필요가 있겠느냐며 법안 제정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하는데 이는 암호이용촉진법 제정 추진계획의 중단이 이미 정통부 방침으로 기정사실화한 것을 내비친 것이 아닌지 궁금하다.
또 이는 정통부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섣부른 정책적 판단으로 여권의 총선 전략에 짐을 지우지 않겠다는 정치적 고려가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인터넷이나 전자상거래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개인정보에 대한 안전장치의 필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고 이를 위해선 암호사용이 오히려 필수적인 현실이 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암호이용촉진법 제정 중단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다.
개인의 암호사용 여부는 근본적으로 자유이며 법률로써 통제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인터넷 전자상거래(EC) 등 개방형 정보통신망 환경에서 민간 암호사용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자 필수요건이 되고 있다.
우리가 지향하는 정보화가 이른 시일내에 선진국 수준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개인정보에 대한 안전장치의 확보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민간의 암호이용을 제도적으로 촉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가 없다.
암호이용촉진법 제정을 통해 정보화 진전에 상응하는 암호사용에 관한 제도를 정립하는 한편 이를 통해 최근 들어 그 중요성이 더해지는 암호산업을 전략산업으로 육성해 나간다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국가기관의 중요 정보시스템에 암호제품 사용을 의무화한다는 것은 암호사용의 대중화 및 관련산업의 건전한 육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호이용촉진법 제정이 오히려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며 시민단체들의 거센 반발이 우려된다고 하는 것은 암호이용촉진법의 핵심인 키복구제도가 관계기관에 의해 잘못 운영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개인의 비밀 키로만 해독할 수 있는 암호데이터를 공익·국가안보 차원 등의 제한적인 경우에 한해 정부기관이 합법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키복구제도가 도입될 경우 자칫 개인정보 누설 등 심각한 인권침해의 우려가 있다는 것인데 이런 문제는 제도적·기술적으로 얼마든지 안전대책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에는 전자주민카드의 여러 가지 편리성에도 불구하고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이 있다는 시민단체들의 반발로 끝내 무산된 사례가 있었는데 이는 근본적으로 여론기관과 정부기관 간의 신뢰문제로 보인다.
정보보호가 전자상거래의 밑바탕이 되는 인프라인 것처럼 암호관련 법규는 향후 사이버사회의 신뢰확보를 위한 기술기반이다. 암호이용 확산과 이에 따른 국가적 차원의 암호 키 관리제도의 마련은 이제 불가피한 현실이다.
암호관련 법규의 제정은 주무부처가 정략적 차원에서 마음대로 입안하거나 보류할 일이 아니다. 특히 개인정보 보호나 개인주권 행사 차원에서 아주 중요하고 민감한 사안이므로 오히려 조기공론화를 통해 여론을 수렴하고 바람직한 정책대안을 마련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 일시에 완벽한 방법을 강구하겠다는 것도 무리지만 일시적이거나 단편적이어서도 안된다. 지속적이면서도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래서 흔히 보안은 최종 목적지가 아니고 영원한 여정(旅程)이라고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