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후쿠오카를 따라서 다이묘 주물공장 연구소를 방문했다. 다이묘 연구소는 본사 건물 맞은편 조그만 호숫가에 있었다. 히라주쿠 한쪽에 커다란 공원이 있었는데, 그 옆에 붉은 벽돌로 지은 오층 건물이 있었고, 연구소는 그 건물의 두개 층을 사용하고 있었다. 연구원들이 있는 곳은 통제가 되어 있었고, 그곳을 안내하지 않았다. 다만 연구소 소장이 있는 방으로 나를 안내해서 그곳으로 갔다. 머리가 희끗한 소장이 나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는 머리가 희었을 뿐이지 나이는 그렇게 많이 들어보이지 않았다.
『영준 소프트웨어라? 소프트웨어 전문업체군요. 일본은 자주 오십니까?』
시마무라 소장은 나에게 명함을 건네주고 상냥한 어조로 물었다. 그가 나에게 자리를 권해서 나는 소파에 앉았다. 나의 옆에 후쿠오카 과장이 앉고, 맞은편 소파에 시마무라 소장이 앉았다.
『일본은 처음입니다. 내가 전화로 후쿠오카 과장님에게도 설명을 했지만, 저는 공장 자동화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개발한 FA33은 원거리 통신 제어도 가능한 기기 자동 시스템으로 집적회로를 응용한 제어장치입니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직조 기계에 자동제어장치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능숙하지는 않지만 일본말로 천천히 말했다.
『우리는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로부터 납품을 받아 장착을 하지요.』
시마무라 소장이 대답했다.
『귀사에서 제작한 기계를 사용하고 있는 한국의 공장에서 자동 시스템 고장이 잦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용하고 있는 제어장치에 이상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문제점이 없던가요?』
『고장이 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납품업체를 바꿔야 할 것이라는 결론을 얻고 있는 참입니다. 값이 싸고 성능이 앞섰다는 말을 듣고 우리는 선생의 제품에 대해 관심을 가졌지요. 제품 카탈로그를 가져왔나요?』
카탈로그를 만들 만큼 수요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원할 것 같아 나는 손수 그린 설계도면을 들고 갔다. 손가방에서 그것을 꺼내 도면을 펼쳤다. 실제 그린 도면을 본 시마무라 소장은 후쿠오카 과장을 쳐다보면서 이상한 미소를 지었다. 제품에 대한 도면을 함부로 노출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