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232)

 그러나 도면만을 가지고 모방을 하기는 어려웠다. 왜냐하면 핵심적인 디테일은 그곳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도면에 나타난 프로그램 설계도 정도는 전문가라면 간단한 설명을 듣고도 할 수 있다. 다만, 핵심기술은 마치 암호와 같은 역할을 한다. 시마무라 소장과 후쿠오카 과장은 도면을 살펴보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들은 무엇을 보았는지 약간 감탄하는 눈치였으나 그것을 애써 감추었다.

 『제품도 가져왔습니까?』

 소장이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네, 한 점 가져왔습니다.』

 나는 가방을 열고 한 개의 회로 카드를 꺼냈다. 그것은 직조기계의 제어 시스템을 통제하는 자동장치 프로그램 회로였다. 그들이 만들고 있는 직조기계에 맞추었기 때문에 장착해서 가동할 수 있었다.

 『귀사에서 납품을 받아 사용하는 프로그램은 열이 올라가면 다운이 잘 됩니다. 기계가 과열되면 다운이 되기 때문에 장시간 사용할 경우 문제가 발생하지요. 그러나 제가 개발한 이 프로그램은 다운 방지 프로그램을 삽입했습니다. 기계에 열이 오르면 속력을 떨어뜨리게 해서 완전 다운되는 것을 방지시켰습니다.』

 『역시 잘 지적했습니다. 제어 시스템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열에 견디지 못하는 점인데 그것을 극복했다니 획기적입니다. 좋습니다. 우리 공장 실무진을 만나게 해드리지요. 숙소는 아직 정하지 않았지요? 내일쯤 만났으면 하는데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호텔 예약은 되어 있습니까?』

 『제가 길 건너 국제호텔에 예약해 두었습니다.』

 후쿠오카 과장이 대답했다.

 『최 사장님이 일본은 처음이라니까 과장이 좀 안내해 주시오. 내일 아침에 공장장을 만나고, 기술과장을 만나도록 하지요. 그리고 에도가와구에 있는 공장을 둘러보시도록 하는 것이 좋겠소. 먼저 호텔에 들어가서 여장을 풀고, 오늘 오후 과장이 동경 시내를 안내해 주시오.』

 시마무라 소장은 나와 과장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의 태도는 나의 제품에 호감을 가진다는 뜻으로 보여졌다. 나는 서울에서 출발할 때부터 승산있는 싸움으로 생각했다. 일본 제품에서는 과열에 기계가 다운되는 결정적인 결함이 있다는 것을 간파했고, 그것을 보완한 것을 들고 왔으니 당연히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