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산업 관련기술의 개발과 진흥을 위해 정부는 전문단지 조성에, 지방자치단체들은 기술산업단지 유치·건설에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
정보통신 관련 전문단지의 건설과 관련, 미국의 실리콘밸리나 대만의 신죽단지, 말레이시아의 멀티미디어 슈퍼 코리더(Multimedia Super Corridor) 사업을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다. 어떻든 첨단기술 개발에 국가적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미국의 실리콘밸리는 정부나 지방정부의 정책에 의해 인위적으로 구축된 단지가 아니고 스탠퍼드대학의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자유시장경제 환경에서 70년간 자생적으로 성장·발전해 온 점이 특징이다.
현재의 실리콘밸리는 전자·정보통신 및 생명공학 분야의 첨단단지 형성에 필요한 조건을 이상적으로 두루 갖추고 있는데 기술의 개발과 제품의 제조·판매에 필요한 인적·물적·사회적 자원들의 공급원을 골고루 갖추고 있어서 가히 첨단기술 벤처리스트들의 천국이 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대덕밸리」는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인 지난 70년대 중반,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인위적인 첨단 연구단지 건설 구상으로 태동된 것이지만 이는 선진국 못지 않은 비전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필자가 여기서 대덕연구단지를 「대덕밸리」라는 명칭으로 거론한 것은 우리나라의 대덕연구단지가 실리콘밸리나 신죽단지에 못지 않은 미래를 가늠케 할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첨단기술단지는 생활환경과 시설공간에 인적·물적 자원, 벤처캐피털 그리고 연구개발 및 상품생산과 판매경영에 필요한 사회적 자원이 원활하게 공급돼야 하는데 대덕연구단지는 정부 및 민간 출연연구기관이 70여개 입주해 있고 과기원·충남대 등 5, 6개의 대전·충남권 대학이 있으며 10개가 넘는 전문대가 있어서 인적 자원 공급원은 잘 갖추고 있다.
물적 자원과 사회적 자원 공급 기능이 아직 미흡하나 정부시책에 힘입어 최근 정부와 민간부문 모두 벤처캐피털 공급이 활발해지고 있다. 특히 앞으로 경부고속철도가 운행될 경우 서울의 인적·물적 자원이 편리하게 공급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유성과 둔산 지역의 오피스텔이 벤처 비즈니스 공간과 벤처 지원 기능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며 오창산업단지와 신탄진산업단지가 완성되면 성공한 벤처리스트의 상품생산과 제조기능 수요를 수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IMF 경제난 이후 국가 경쟁력을 논할 때 흔히 연구개발 효율화를 논해왔다. 스위스 IMD가 발표했다는 「한국의 연구개발 투자는 세계 7위인데 연구개발 투자효과는 세계 22위에 불과하다」는 조사결과를 많은 사람들이 인용하고 있다. 조사결과의 정확성 여부는 알 수 없으나 투자효과의 제고 처방을 위해서는 여러 각도에서 짚어봐야 할 사항이다.
연구개발 예산의 투자효과는 연구개발의 성패가 1차적으로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개발된 기술의 상품화와 생산기술, 상품화에 필요한 벤처캐피털의 유무, 시장진입 능력 등 연구결과의 상품화와 판매단계를 연계해서 판단해야 한다.
지난 25년간 대덕연구단지는 연구개발 기능 위주로 지방정부와 무관하게 운영돼 상용화 지원 기능에 의한 지역발전은 너무나 미흡했다고 할 수 있다.
연구기관들은 우선 자기가 개발한 기술을 외부 벤처리스트에게 이전해 줄 수 있는 기능을 강화하고 내부 연구원이 창업을 원할 경우 특허권 소유침해가 없는 한 창업 지원을 강화하도록 해야 한다.
개발된 기술의 이전은 개발자가 가장 잘 해줄 수 있고 개발자가 창업의 최적임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창업자들을 위하여 연구기관들 가까이 벤처양육(인큐베이터)센터를 늘리고 상품화에 성공한 벤처리스트가 서울로 옮겨갈 필요 없이 현지 산업단지나 사무실 공간에서 비즈니스 단계로 쉽게 진입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꾸준히 성장해 가는 대덕밸리를 가까이 두고 한국의 실리콘밸리를 멀리서 찾으려 애쓸 필요가 있을까.
<정선종 한국전자통신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