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남북 공용 컴퓨터용어사전 발간

 사상 처음으로 남북 공용 컴퓨터 용어사전이 발간된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반갑고도 뜻깊은 일이다.

 남과 북의 국어학자와 정보기술자 그리고 중국 조선족을 포함한 미국·독일 등지의 해외 동포학자들이 최근 중국 연변에서 개최된 제4차 우리말 컴퓨터처리 국제학술대회(ICCKL)에서 사상 처음으로 남과 북이 공용할 수 있는 「국제표준정보기술용어사전」이란 이름의 컴퓨터 용어사전의 발간을 공식 발표하고 이를 기념하는 출판기념회를 가졌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임에 틀림없다.

 이는 남북 민간 전문가들을 주축으로 범민족학술대회가 창설된 지 6년 만에 거둔 최초의 성과물이라는 데 큰 의의가 있으며 그것도 연변에서 이번 제54회 광복절을 맞아 발표함으로써 해외의 동포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 된 것 같다.

 남측의 국어정보학회, 북측의 조선콤퓨터쎈터, 중국의 조선어정보학회 등 관계기관이 참여하고 있는 범민족학술대회가 남북한 학술 공동연구의 시금석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도 민족 동질성 확인에 최우선을 두고 이를 위해 가장 비정치적이면서도 시급한 주제로 한글을 선택했고 미래 민족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한글의 정보처리 기술분야를 핵심과제로 선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학술대회가 여느 학술대회와는 달리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됐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제표준화기구(ISO)가 정보기술 분야의 표준용어로 규정한 2700여개의 용어와 해설을 담고 있는 이 사전은 또 한·중·일 3개 국어 색인까지 마련하고 있어 앞으로 국제적으로도 상당한 평가를 받지 않을까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히 분단의 장기화로 남북간 언어의 이질화가 심화되면서 많은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이번 성과는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고 나아가 남북통일에 대비한 정보산업 육성의 토대 마련 등 여러 가지 부수적인 효과가 결코 적지 않을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북측 대표가 『이번 성과가 남북간 교류가 새로운 차원에서 전개되는 계기가 됐으며 지속적인 교류가 필요하다』고 밝힌 것도 이번 성과나 기대효과가 매우 크기 때문일 것이다.

 용어는 새로 만드는 것보다 그 용어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정부는 물론 언론이나 학계·산업계에서도 남북공동의 용어에 대해 좀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물론 이번에 제정된 컴퓨터 용어가 완전한 것은 아니며 앞으로도 계속 보완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본다.

 또 실질적인 통일사전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선 정부를 포함, 학계·산업계·연구계 등 광범위한 계층의 여론수렴 과정을 거쳐 현실적인 사용가치를 인정받는 일도 중요하다.

 범민족학술대회 측에선 이런 점을 감안, 후속대책을 강구하는 데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지난 96년 제3차 학술대회에서 거론됐던 한글 자모순, 컴퓨터 처리를 위한 한글코드, 컴퓨터 자판 배열순서 등의 추진문제는 계속해서 좋은 성과가 있도록 박차를 가해야 한다.

 또 내년엔 연변 이외의 지역에서 우리말 문자의 정보화 문제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번 성과를 토대로 정보통신 분야 이외의 여타 분야에 있어서도 남북한 학술 공동연구가 활성화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것이 우리의 바람이다.

 어떤 분야든지 새로운 사전의 발간은 그 분야의 개념정립과 장래의 성장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기초작업이다. 더구나 정보통신 분야처럼 산업의 국제성과 국지성의 상관관계가 절묘한 조화를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는 용어사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차제에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용어학이나 사전학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 남한에서의 용어 통일화 작업도 미진한 실정인데 이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된다는 점이다.

 현재 학회나 협회 차원에서 산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용어편찬 작업도 국가 차원에서 단일기구를 두고 수행하는 문제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21세기 정보선진국을 지향하고 있는 우리나라에 아직 제대로 된 용어사전 하나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