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의 집은 도쿄 대학에서 가까운 우에노 역 한쪽에 있었다. 골목 안쪽에 장미 넝쿨이 가득 있는 조그만 연립주택 2층이었다. 방이 모두 세 개이기는 했지만 방은 모두 매우 작았다. 거실을 겸해서 쓰는 주방이 있고, 현관 옆에 화장실이 있었으며, 거실 한쪽에 테라스가 있었다. 방 하나는 후쿠오카 부부의 방이었고, 다른 한 방은 컴퓨터 게임에 미쳤다는 그의 아들 방이었으며, 그리고 문간에 있는 방 하나는 후쿠오카의 누이동생 방이었다. 그의 누이동생은 도쿄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4학년 학생이었다. 서클 활동으로 시골로 내려갔기 때문에 후쿠오카의 여동생은 볼 수 없었으나 가족 사진에서 얼굴을 보았다. 웃고 있는 입술 사이로 뻐드렁니가 나온 것이 눈에 띄었으나 아주 예쁜 얼굴이었다.
후쿠오카의 아내는 도쿄 대학 공대 교학실의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후쿠오카를 비롯한 아내 역시 모두 도쿄 대학 출신이라고 하였다. 나는 막연하게나마 일본 여자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는데, 그것은 대단히 상냥하고 애교가 많을 것이라는 관념이었다. 그러나 후쿠오카의 아내는 그렇게 상냥하거나 애교있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례한 것은 아니었는데, 약간 도도하면서 지적인 느낌을 주었다.
방안에 따로 식탁이 마련되어 식사를 하는데 후쿠오카의 아내와 아들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들은 주방에서 먹는다고 하였다. 나는 함께 먹기를 바랐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직도 관습이 되어 내려오는 가부장적인 남성 우월주의였는지 모른다. 조선시대의 한국에서도 그랬지만, 막부 이전의 일본에서는 여성을 낮춰보았다. 여성의 존재는 남자를 즐겁게 해주고, 가계의 생식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그러한 도구적인 가치는 명확한 전통을 만들어 냈다. 성주가 다른 성을 쳐서 함락하면 패망한 성주의 아내는 새로 점령한 성주의 여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형이 전쟁에 나가서 죽으면 형수는 동생의 아내가 되기도 한다. 사촌간의 근친 결혼은 지금도 자유스러우며, 여성의 혼전 성경험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후쿠오카의 말에 의하면 여성 관념이 점차 변하고 있다고 하였다. 얼마 전만 하여도 여자가 남자 알기를 하늘같이 생각했다. 아내는 남편 앞에서 항상 무릎을 꿇고 앉았으며, 오직 복종만이 전부였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과 유럽의 문화의식이 밀려와서 여성 상위시대에 있다고 한다. 아내는 남편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으며, 아내에게 매맞는 남편의 수가 늘어난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