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268)

 저녁이 되면서 공장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승용차를 타고 오는 사람도 있었고, 버스편을 이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더러는 승합차를 타고 왔다. 나의 첫 직장이었던 동양컴퓨터 기술산업사의 전 직원들과 현재의 직원들이 왔다. 기술실장으로 있었던 허성규 실장은 이제 상무가 되어 있었고, 기술차장 이길주는 대기업으로 옮겨가서 부장이 되어 있었다. 뚱뚱한 몸집의 김윤식은 이제 신혼시절이 끝났을 것이다. 내가 함께 근무할 때 그는 신혼이라는 핑계로 숙직실 근무를 피하면서 나보고 대신 서달라고 하였다. 그 대신 서주었던 숙직 근무도 많았다. 그때마다 그는 나에게 조그만 선물을 하곤 하였다. 숙직비를 대신 주지는 않았다. 어느 여인과 열애중이었던 전태호는 지금 결혼해서 아이가 둘 있다고 한다. 그런데 결혼한 여자는 그때 연애하던 여자가 아니었다. 군대 면제자로 그것이 무슨 자랑이나 되는 것같이 자주 입에 올리던 강순익은 아직 미혼이었다. 그런데 나이가 어려 보이는 젊은 여자를 데리고 왔다. 소개를 할 때 들으니 약혼자라고 한다. 학교 선배이기도 한 양창성은 나타나지 않았다. 동양컴퓨터 산업사에서 현재 근무하고 있는 노지우 과장과 윤대섭은 함께 왔다. 카이스트에서 통신연구원으로 있는 한성우와 홍 박사가 왔다. 홍 박사는 내가 그녀의 집에 영어 가정교사로 입주해서 딸 용희를 가르쳤던 것이 인연이었다. 여러 해가 지났는데도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섹시했다. 나이 사십줄에 접어들었으나 사회활동을 하는 여자는 탄력이 있고 아름다움을 계속 지니는 것이다. 홍 박사와 만나 악수를 할 때 그녀가 나의 손바닥을 손가락으로 간질었다. 옛날에도 그런 짓을 해서 깜짝 놀랐는데, 세월이 흘러도 그 장난은 변함이 없었다.

 파티에 참석한 고객 가운데 반가운 사람 중의 한 명은 송혜련이었다. 그녀는 은행지점장 김지식과 같은 승용차를 타고 왔다. 회사와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녀가 근무하는 은행과 거래했다. 그녀와 나 사이가 애인관계라는 것을 알고 지점장이 그녀에 대해 신경을 쓴다는 말이 들렸다. 지점장은 처음에 나를 하찮게 대했으나, 일본기업으로부터 50만달러가 입금된 이후로 그의 태도가 달라졌던 것이다. 김지식 지점장의 권고로 나는 당좌거래를 시작했고, 그의 호의로 자금을 빌리는 일까지 약속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2억원의 은행대출을 받으려고 하였다. 이제 서류가 넘어갔기 때문에 곧 결재가 날 것이다. 물론 공장 부지와 공장을 담보로 한 대출이지만 그때만 해도 중소기업이 돈을 빌리는 일은 어려웠다. 지금도 별로 다를 것이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