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컴 헨리 니컬러스
할리우드가 IT업계의 기업가들 중 배우를 뽑아 「버디 무비」를 만든다면 「두 헨리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제일 먼저 캐스팅될 만한 두 사람이 있다.
휴렛과 패커드처럼 호흡이 척척 맞는 헨리 니컬러스(40)와 헨리 새뮤얼리(45)다.
니컬러스는 캘리포니아 어빙에 위치한 브로드컴의 CEO, 새뮤얼 리는 CTO 겸 연구개발 담당 부사장이다.
브로드컴은 케이블모뎀과 디지털 세트톱박스 시장의 강자. 두 사람은 TRW사의 엔지니어 시절 만났다.
니컬러스는 칩 디자이너였고 새뮤얼리는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의 전문가였다.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성격의 소유자다. 니컬러스가 야전사령관이라면 새뮤얼리는 전략가 스타일.
니컬러스는 마지막까지 일을 미루다가 폭발적인 기세로 단숨에 해치웠고 새뮤얼리는 매사에 꼼꼼하고 조직적인 타입이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호감을 가졌고 최상의 파트너가 됐다.
이들은 88년 페어게인 테크놀로지스사를 공동으로 설립했다. 그당시 미국은 방위계획에 수십억달러를 쏟아붓고 있었다.
두 헨리는 오늘날의 펜티엄보다 빠른 450만개의 트랜지스터를 집적한 웨이퍼 프로세서를 개발, 정부에 납품했다.
냉전이 끝나자 페어게인사는 HDSL 시장에 새로운 승부수를 던졌다. 니컬러스는 T1라인을 더 값싸게 인스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투자자는 이 아이디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ISDN과 달리 HDSL은 혁신적인 기술이 아니라는 이유로 돈을 투자하기를 꺼렸다.
벤처투자업체 브룩트리가 고심 끝에 돈을 댔고 페어게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HDSL 시장의 1위 업체로 떠올랐다.
ISDN이라는 기술에 집착하기보다 바로 쓸 수 있는 T1라인을 원하는 고객들의 요구를 읽어낸 니컬러스의 고집 덕분이었다.
두 헨리는 93년 브로드컴을 설립했다.
이번에는 벤처캐피털 자금 유치를 거절하고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버텼다.
인텔과 사이언티픽 애틀랜타가 각각 5%의 지분을 가진 것을 제외하면 아직도 대부분의 주식을 새뮤얼리와 니컬러스가 차지하고 있다.
브로드컴은 이더넷, 케이블모뎀, 디지털 세트톱박스, VDSL, 위성통신 다섯 분야의 칩을 생산하는 업체다.
요즘 주식시장에서 유행하는 말처럼 「달걀을 한 바구니에 넣지 않는」 전략이다.
이 가운데 케이블모뎀과 디지털 세트톱박스 시장은 브로드컴의 독무대다.
고객명단에는 샌타클래라의 3Com과 새너제이의 시스코시스템스가 포함돼 있다.
니컬러스의 경영스타일에 대해 새뮤얼리는 전쟁터에 나선 지휘관 같다고 평한다.
미국 에어포스 아카데미 출신인 니컬러스는 원래 하늘을 나는 꿈이 무산되면서 엔지니어로 방향을 바꿨다.
니컬러스의 말투는 마치 군인장교처럼 직설적이다. 그는 부하직원을 녹초로 만드는 엄한 상관이다.
브로드컴의 회의는 오후 6시 이후에 시작되고 때때로 자정까지 계속된다.
그리고 최고경영자는 12시가 다 되어야 사무실을 나선다.
니컬러스와 새뮤얼리는 브로드컴의 두 사령탑인 동시에 언제든지 새로운 모험에 나설 준비가 돼 있는 최상의 파트너로 우리 기억에 남을 것이다.
이선기기자 s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