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련 예산이 건국 후 처음으로 정부예산 대비 1%를 넘어 9300여억원이 책정되었다는 소식은 문화예술계는 물론이고 온 국민이 함께 경하할 일이다. 더욱이 지식과 문화가 새 천년의 핵심부문으로 대두되고 있는 시기에 많은 사람의 관심사인 문화산업이 그 중 일부로 포함되어 있음은 더욱 다행스러운 일이다.
문화산업은 우리 고유의 전통적 예술에 기반을 두고 선진화된 기술이 가미되면 손색없는 상품으로 세계시장에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장르의 예술이 그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전통적인 미술·음악을 비롯하여 연극·영화·무용·디자인·패션·섬유·사진·비디오·애니메이션 등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산업의 출발점과 기본은 지역적이고 민족적이며 전통적인 것에서 시작하여 그 특성을 극대화하는 것일 것이다. 더욱 발전된 모습에서는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고 일반적이고 보편화된 감성을 수용하는 세계화된 산업으로 변신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문화예술과 과학기술의 접목이 요청되고 있으며 이의 성공여부가 우리나라의 문화선진국 진입을 결정짓게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아 예술과 과학기술은 가깝기도 하고 또한 멀기도 한 애증이 엇갈린 관계를 맺어왔다. 그 한 예로 과학과 지성이 기초적 논리로 믿는 필연성을 오히려 무한한 우연의 일부로 파악하고 우연과 무의식을 옹호하는 예술흐름인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에서는 과학기술을 반인간성의 표출로 간주한다.
그러나 광학예술인 옵아트, 동력·빛의 효과 등을 이용한 키네틱아트,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등에서는 과학기술을 적극 활용하여 감성영역의 가능성을 넓혀가는 예술활동이 활발히 진행되어 왔다.
논리적·이성적인 과학기술을 관장하는 좌뇌와 직관적·감성적인 예술활동에 직결된 우뇌가 상호 보완, 협조하여 전체적으로 균형있는 인간생활이 이루어지듯이 예술활동과 과학기술의 접목은 자연스럽고 필요한 과정일 것이다.
과학기술과 감성의 만남의 예로 감성공학을 논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과학기술 방법론으로 인간의 감성적 행위를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시각·청각 등 오감을 정량화, 주위환경의 최적화를 통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산업에서 과학기술이 갖는 역할은 이보다는 넒은 의미의 접목을 뜻하며 충분하고 적극적인 활용과 새로운 영역의 개척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문화예술과 과학기술의 접목가능성에 대한 좀더 근원적 시각에서 접근하여 정보기술과 삶의 변화, 디지털 네트워크와 지구시민사회, 새로운 미디어와 예술의 미래 등에 대한 연구를 내용으로 최근 KAIST의 여러 분야 교수들이 함께 보고서를 출간하였다.
「통합의 가능성을 꿈꾸는 KAIST 사람들」이라는 부제와 함께 「디지털시대의 문화예술」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이 책에서는 이 분야에서 앞서가는 연구와 교육의 장으로 MIT의 연구소인 미디어랩을 소개하고 있다. 이 연구소에서는 TV·음반·영화·신문·컴퓨터 등 광범위한 커뮤니케이션 매체에서 여러 형태의 융합을 시도하고 있으며, 오락에서 예술·교육에 이르는 다방면의 인간 커뮤니케이션 미래형태를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시각지능, 이미지 도서관, 의미론적 이미지 모델링, 인터액티브 시네마 등이 또한 그들 연구내용의 일부다. 또한 특정 전공을 두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실험과 연구를 병행함으로써 창조적 인재양성과 더불어 문화예술 관련 기술분야가 필요로 하는 인력확보를 도모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학교에서 멀티미디어 제작에 관련된 다양한 학과가 신설되고 있다. 이곳의 교육과 연구가 하루속히 자리잡고 체계적으로 운영돼 새로운 미디어 기술을 습득한 인력들이 앞으로 문화산업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이미 전통적 산업과 과학기술과의 협력은 산·학·연을 통하여 자리잡고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제는 이같은 모습의 협력이 문화예술계와 과학기술계 상호 이해와 협조 속에서 지체없이 시작되어 문화산업의 성공적 발전을 위하여 다같이 노력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최덕린 한국과학기술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