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272)

 나는 가끔 85년 6월 1일의 저녁을 회상한다. 공장을 짓고 준공식 축하연을 했던 그날은 나에게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것은 최초로 기업다운 기업의 면모를 갖추던 순간이기도 했고,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자만심에 가득차서 세상을 온통 얻은 기분을 가졌던 것이다. 그랬기 때문인지 그날 나는 너무나 행복했다. 과거에 알았던 사람들을 초대해 야외에서 바비큐 만찬을 대접했다. 100여명을 초청했지만 실제 방문해준 사람은 50여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나에게 호감을 갖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참석해주었다. 그날은 창업을 한 날보다 더 기뻤다. 그것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창업을 하던 날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있었지만, 자신감을 가졌던 그날은 오직 행복하기만 했다.

 공장 준공식의 그날 축하연은 나에게 있어 하나의 시험이었는지 모른다. 나는 기업이 어려울 때 그날의 행복감을 회상했고 기업이 잘 돼도 그날의 기분을 반추했다. 공장을 가동하면서 고려방적에 납품할 기기 자동제어장치 FA­44를 생산했다. 당시로서는 많은 수요가 창출되지 않아서 공정은 단순했고, 기술자와 단순 숙련공이 참여하는 수공업에 의존해서 생산했다. 그래서 하루에 100여개 정도 완성품이 나왔다. 고려방적에는 5000개를 납품하기로 약속이 돼 있었는데, 그것을 모두 만들려면 50여일이 소모됐다.

 일단 완성한 제품은 자체의 검증을 거친 다음에 회사 기술자들이 고려방적에 가지고 가서 장착을 했다. 고려방적에서 일하는 기술자들은 설사 숙련공이라 할지라도 컴퓨터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가서 설치를 하고 사용하는 방법과 관리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기에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고, 사용하는 교육은 배용정이 맡아서 했다. 그는 거의 고려방적에 가서 살다시피 했는데, 더러는 한용운과 오준호가 대구로 내려가서 지원해주었다.

 그 무렵 나는 자주 일본에 가서 다이묘 주물공장에서 일했다. 내가 제공한 제어장치 FA­33에 대해서 그곳 기능공들에게 교육을 했기 때문이었다. 상당히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 기름이 잔뜩 먹은 기계가 잘 돌아가는 것처럼 기업은 순풍을 단 듯했다. 그러나 그것은 「듯했다」는 것이지 실제는 그렇지 못한 문제점을 노출시키기 시작했다.

 땅을 사고 공장을 짓고 설비를 하는 통에 자금이 바닥나고, 거기에 은행에서 빌린 돈도 독에서 물이 빠지듯이 빠져나갔다. 여름이 됐을 때 어음을 할인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