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부터 17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정보통신이라는 창을 통해 인류의 새로운 천년을 미리 들여다볼 수 있는 텔레콤 99가 열렸다. 텔레콤 99는 인류의 삶을 변화시켜 온 동력이 불과 바퀴, 그리고 PC를 거쳐 마침내 정보기술(IT)에 이르렀다는 평범한 진리를 재삼 확인시켜 주었다. 텔레콤 99에 나타난 밀레니엄 인프라를 집중 점검, 21세기 통신시장은 물론 성큼 다가온 디지털사회의 모습을 3회에 걸쳐 가늠해 본다.
<편집자>
이번 텔레콤 99는 광대역 네트워크의 급부상, 개인의 통신 편의성 극대화라는 두가지 흐름으로 요약된다. 「더 멀리, 더 높이, 더 빨리」라는 올림픽의 캐치프레이즈는 통신올림픽으로 불리는 이번 텔레콤 99에도 고스란히 적용됐다. 세계의 모든 통신업계 거인들이 「더 멀리, 더 많이, 더 빠르게」 정보를 전달하는데 초점을 맞춘 기술과 신제품을 대거 선보였으며 이를 집약한 것이 바로 광대역 네트워크다.
광대역 네트워크의 핵은 메가(M)시대의 개막이다. 전화선을 포함한 기존의 모든 통신망은 전송속도를 「Kbps」로 표기한다. 음성을 중심으로 기껏 텍스트 정보만을 주고받는 산업사회형 네트워크인 것이다.
하지만 광대역 네트워크로 가면 이를 「Mbps」로 표기한다. 음성은 일부분에 불과하고 동영상을 비롯한 방대한 데이터를 좀 더 빨리 안정적으로 송수신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 배경에는 밀레니엄 패러다임으로 정착한 인터넷이 자리잡고 있다.
무선이건 유선이건 Mbps급 전송속도를 실현하지 않고는 더 이상 21세기 네트워크로서의 자격이 없는 셈이다. 텔레콤 99에 선보인 모든 통신장비, 단말기는 Mbps급 전송속도를 전제로 만들어졌다. 비대칭디지털가입자회선만 해도 8Mbps이다.
통신업체들은 음성전화, 영상전화, 주문형비디오(VOD), 케이블TV, 위성방송과 인터넷 등 멀티미디어 통신서비스를 차세대 21세기의 전형으로 설정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각가지 제품을 내보냈다.
21세기 통신인프라로 확고히 자리잡을 광대역 네트워크는 기존 공중통신망(PSTN)의 디지털화를 통해 이뤄지기도 하고 비대칭디지털가입자회선(ADSL)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무선전송기술의 결정판으로 평가받는 차세대이동통신(IMT2000)과 위성인터넷은 21세기를 여는 광대역 네트워크의 총아가 될 것임을 이번 텔레콤 99에서 증명해 보였다.
이같은 기술 흐름과 더불어 사회·문화적으로는 통신이 21세기 디지털 인간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사용편의성의 극대화를 추구했다.
통신혁명은 단말기와 사용자인 인간의 거리를 좁혀가는 과정이다. 마을에 전화가 한 대뿐이던 시절에서 무선기술의 진보로 누구나 전화기를 들고 다닐 수 있는 시대로 바뀌었고 21세기에는 「우주」를 호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IMT2000으로 대표되는 21세기 이동전화단말기는 더 이상 전화의 개념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음성전화는 기본이고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해 자신이 필요한 정보를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무제한 검색, 이용할 수 있다. 쇼핑과 뱅킹은 물론 영화나 뉴스까지도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즐길 수 있다. 「2차선 국도(기존 네트워크)」를 「16차선 고속도로」로 확장해 준 광대역 네트워크가 이를 선도한다.
이번 텔레콤 99의 또다른 포인트는 세계 통신업체간 무차별 짝짓기와 마이크로소프트(MS)의 행보다.
기술이 복합화·광대역화되다 보니 이제는 어느 한 기업이 이를 전적으로 커버하거나 시장에서 독주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가 됐다. 여전히 장비업체들은 서비스시장 진입을 부인하고 있지만 영역구분이 모호해지고 있어 장비와 서비스업체가 시장에서 서로 뒤엉키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사업자들은 멀티미디어서비스를 가능케 하도록 장비업체에 턴 키 베이스의 납품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교환기업체는 단말기업체와 나아가 서비스 사업자와 전략적 제휴에 열을 올리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0세기 통신시장 판이 완전히 재편되는 과정을 밟고 있는 것이다.
MS와 빌 게이츠는 텔레콤 99 최대의 화제 인물과 기업이었다. MS가 지향하는 것이 소프트웨어에서 출발, 인터넷을 정복하고 마지막에는 광대역 네트워크로 묶이는 정보단말기로 밀레니엄 인프라를 「천하통일」하는 것이어서 더욱 주목됐다. 빌 게이츠는 기대에 부응하듯 무선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기술적 추세는 명확하지만 세계의 장비 단말기업체들은 이제 막 스타트라인에 선 채 새판짜기에 내몰려 안갯속을 헤매고 있는 것이 텔레콤 99의 또다른 모습이었다.
이택기자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