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배타적 상호의존성"과 통신정책

 우리나라 통신산업 발전을 위한 몇 가지 논점들을 본란을 통해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의 정보통신 전략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실행하느냐는 점이다. 실행 주체로는 정책을 책임지는 정부와, 사업을 책임지는 사업자를 들 수 있다.

 얼마 전, 차를 타고 가다가 다음과 같은 내용의 방송을 들었다. 어느 서커스단에 부녀 곡예사가 있었는데, 아버지가 아래서 긴 장대를 받치고 있으면 딸은 그 장대 위에서 묘기를 부렸다. 아버지가 딸에게 『얘야, 우리가 곡예할 때, 나는 장대 끝에 있는 너를, 너는 밑에서 장대를 받치는 나를 신경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딸은 『아니에요. 아버지는 아버지 하시는 일에 집중하시고 저는 제 일에 충실하는 것이 우리 부녀가 사는 길이에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어떤 일을 함께 해 나갈 때 남의 일에 참견할 게 아니라 자기가 맡은 일을 충실히 잘 수행하는 것이 결국 서로를 돕는 것이라는 교훈이었다. 이를 이른바 「배타적 상호 의존성」이라고 부른다. 『네 일이나 잘 해』라는 말이 타당성을 띠게 되는 대목이다.

 정부와 사업자들도 마땅히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해 본래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 특히 정부가 제 할 일을 가려서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상층부의 현명한 개혁이 그 아래 단계에서 들이는 노력과 시간을 엄청나게 절약시켜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어떻게 「배타적」으로 자기 일에 충실할 수 있을까. 정부가 해야 할 일과 입안해야 할 정책은 산적해 있다. 하지만 새로운 정책과 제도를 입안하는 것과 함께 기존 제도의 불합리성을 시정하는 노력을 병행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통신정책 과제 중에서, 필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통신사업 구도개편이다. 기술발전으로 서비스간의 경계가 없어지는 것은 이미 진행중인 현상이다.

 컴퓨터망인 인터넷을 이용한 인터넷폰 서비스와 기존의 전화망을 이용한 전화서비스는 약간의 품질 차이를 빼면 동일한 범주와 시장에 속하는 서비스다. 만약 이들 서비스가 시장에서 서로 경합하는 서비스라고 판단하면 그에 대한 규제 또한 형평에 맞게 시급히 재조정해야 할 문제다.

 또 유무선 통신사업 구도만 해도 그렇다. 유선 및 이동전화 가입자가 공히 2000만명이라는 사실은 우리나라 가구당 유선과 이동전화가 각 2대씩임을 의미한다.

 가구당 한달 기본료만 해도 상당한 액수인 셈이다. 보편적 서비스라는 명분 때문에 유선전화 기본료를 수백원 인상한다면 야단이지만, 이미 같은 수준으로 보급된 이동전화 요금에는 의외로 관대하다. 기존 제도를 합리적으로 새로운 경쟁에 적합하게 빨리 변경해주지 못하면, 결국 이로 인한 피해는 우리 사회 어디에선가 비용으로 지불되는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사용되는 기술이나 통신망 유무로만 구분된 「자격」 위주의 사업자 구도가 조속히 선진국형인 「서비스」 위주의 구도로 재편되면 이런 모순들은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일은 오로지 정부의 배타적인 권리요 의무라고 생각한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 스티븐 코비 박사는 사람 간의 관계가 승화·발전해 나가는 단계를 「종속(Dependence)」 → 「독립(Independence)」 → 「상호 의존(Interdependence)」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정가 장대를 안전하게 받쳐주면서 장대 위에 선 사업자들이 훌륭한 묘기를 부리는 것을 기대해보는 것은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내 일이나 하자」는 무관심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이런 의식은 가장 높은 수준의 「상호 의존」 관계에서 나온다. 정부의 통신정책이 나올 때마다, 과연 「배타적」인지를 확인해보면 어떨까 싶다.

 김한석 한국통신경영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