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277)

 『고려방적에서 이미 결제한 어음을 막지는 못할 거야. 앞으로의 대책이나 생각해보지. 다시 만들어 교환해주는 것이 어떨까?』

 배용정이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그는 가급적 나의 시선을 피하면서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미안해서 내 시선을 피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지내놓고 보니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이미 준 어음이라고 해도, 제품에 클레임을 걸고, 은행에 돈을 신탁해놓고는 결제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 우리에게 보낸 내용증명의 내용이 그렇잖아? 모두 교환해주지 않으면 그렇게 하겠다는 거 아니야? 그런데, 그것을 다시 만들어 모두 교환하려면 두어 달은 걸릴텐데. 그리고 다시 만드는 것도 불량품이 없으라는 법이 없고. 이렇게 되고 보니 하드웨어쪽은 손을 대지 말고 기술용역만 하는 것인데.』

 나는 후회하면서 말했다. 이 처음의 일이 나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던지 나는 그 이후로 가급적 하드웨어 분야는 손을 대지 않았다. 그것은 제대로 된 설비시설을 갖추지 못한 상태로 제품을 만드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당장 형하고 내가 대구로 내려가서 고려방적 간부들을 만나봅시다.』

 배용정은 담배를 피워 물며 창밖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운전기사를 불러 대구로 내려갈 준비를 하라고 했다. 운전기사 윤학수는 군에서 막 제대한 사람으로 아직 머리카락이 짧았다. 그는 군에 있을 때 사령관의 차를 운전했다. 그래서 군기가 잡혀 있어서 아직도 모든 동작에 절도가 들어가 있었다.

 사람들이 그것을 느끼고 한마디씩 하면서 놀렸다. 이를테면, 내게 차 문을 열어주는 자세가 군대식으로 절도가 있었고 묻는 말에 대답을 해도 『그렇습니다』하고 절도있게 말했다. 그렇지만 어느날 그가 사귀는 여자에게 전화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때는 부드럽고 유연하게 지껄였다. 절도있게 말한다고 해서 아무에게나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배용정과 나는 차를 타고 대구로 내려갔다. 고려방적 공장장에게 전화를 해서 내려간다고 전했다. 그러자 공장장은 내려오는 것이 시급한 것이 아니고 제품을 교환해주는 일을 결정해달라고 했다. 교환은 당연히 해주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오작동이 없는 것까지 교환하는 것은 쓸데없는 낭비라고 했다. 그러자 공장장은 현재 오작동이 없다고 해서 나중에 고장이 없다는 보장이 있느냐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