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과 대만 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 LCD) 업계의 투자 움직임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양상이다.
일본에서는 하반기 이후 샤프를 비롯해 도시바와 IBM의 합작사인 디스플레이테크놀로지(DTI)·NEC·히타치제작소 등 주요 업체들이 앞다퉈 대규모 투자계획을 내놓고 설비 증강에 들어갔다.
대만에서도 주요 6개사 가운데 중화영관을 제외한 한우채정·기정광전·연우광전·광휘전자·달기과기 등 5개사가 라인 증설에 일제히 착수했다.
특히 이들 일본과 대만 업체의 증설 투자는 내년 가을에서 2001년 초에 걸쳐 가동시기가 집중된데다, 업체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현재의 1.5배에서 2배나 되는 대규모여서 세계 TFT LCD 업계에 새로운 질서를 초래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주목된다.
이들의 설비증강은 얼핏 노트북 컴퓨터용의 심각한 공급부족을 겨냥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TFT LCD의 수급불균형은 내년 중반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미국의 시장조사 업체인 디스플레이리서치는 최근 보고서에서 TFT LCD의 공급 부족이 내년 3·4분기까지는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데이터퀘스트사는 기판유리, 디스플레이 구동 IC, 콘덴서, 컬러필터 등 주요 부품의 부족으로 TFT LCD의 수요 초과현상이 적어도 내년 말까지 계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과 대만의 이번 증설 투자는 노트북 컴퓨터용 수요 초과가 조금씩 해소될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말부터 그 효과가 집중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점에서 분명 다른 목표를 겨냥하고 있다.
디스플레이리서치는 TFT LCD의 생산량이 해마다 91%씩 증가하는 반면 수요는 59%씩 늘어나 일본과 대만의 투자가 여전한 2001년에는 수요와 공급이 역전되는 공급초과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따라서 어떤 면에서 일본과 대만은 공급 과잉의 위험조차 감수하고 대규모 설비투자에 나선 셈이다.
일본 업체들은 디지털가전용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일본 업체로는 처음 지난 7월 540억엔 규모의 대형 투자계획을 발표한 샤프는 내년 8월 가동 예정으로 새로 건설하는 월산능력 20만장 규모(20인치 환산)의 미에 2공장에서 액정TV용, DVD플레이어(DVDP)용 등의 TFT LCD를 양산할 계획이라고 못박았다.
각각 320억엔과 340억엔의 투자계획을 내놓은 마쓰시타전기와 히타치도 노트북 컴퓨터용보다는 디지털가전용으로 발길을 돌리려는 움직임이다. 응답속도가 20㎳를 밑돌아 빠른 영상도 자연스럽게 표시할 수 있는 제품을 양산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일본 업체들의 이같은 움직임은 컴퓨터용 분야에서는 이미 강국으로 입지를 다진 한국이나 새 강자로 떠오를 대만과의 경쟁을 최소화하는 대신, 아직 기술력에서 앞서는 디지털가전에 자원을 집중, LCD 종주국으로서의 체면을 유지하며 1위의 자리를 지키겠다는 의도를 깔고 있다.
이에 대해 대만은 노트북 컴퓨터용에 치중해 이 분야에서 앞서는 한국을 따라잡아 2위 생산국으로 부상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치고 있다.
대만 주요 5개사의 합계 생산력은 이번 증설투자가 완료되는 2001년 봄 현재의 2배 이상으로 팽창하게 된다. 이 때문에 공급과잉에 따른 치열한 가격경쟁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만의 추격은 2001년 이후에도 무서운 속도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디스플레이리서치는 대만의 세계 TFT LCD 시장 점유율은 올해 3%에 불과하지만 지속적인 시설투자로 내년에는 13%, 2001년에는 24%로 뛰어오르고, 2003년에는 31%에 달해 일본에 이어 세계 2위의 TFT LCD 생산국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새 수요 창출을 통해 1위를 고수하려는 일본과 대량 생산으로 2위에 오르겠다는 대만의 증설투자가 앞으로 1년 후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귀추가 주목된다.
신기성기자 k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