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전화 도·감청문제의 폐단을 막기 위해 국회에서는 법원이 발부하는 영장 없이 실시하는 기존 긴급감청제도의 개선과 불법감청행위에 대한 처벌강도를 높이려 하고 있다.
지난달 정기국회에서 도·감청문제가 정치쟁점으로 떠오르자 여야는 이와 관계가 있는 통신비밀보호법은 반드시 개정해야 한다는 쪽으로 가닥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여야 국회의원들은 이번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을 놓고 그 범위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티격태격하며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
여하튼 여야가 올해를 2개월도 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법 개정 필요성에 눈을 뜬 것에 대해 그나마 다행으로라도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통신비밀보호법에는 도·감청과 관련한 조항 외에도 발신번호 표시제한 조항이 포함돼 있다. 도·감청에 의한 피해를 바위라고 한다면 얼굴 없는 범죄인 전화폭력 피해는 산에 비유할 수 있을 만큼 그 피해는 심각한 실정이다. 특정 계층의 유명인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스토킹 등의 전화폭력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연초 정보통신부와 관련업계는 전화폭력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발신자의 전화번호를 수신자의 단말기에 표시해주는 발신자 전화번호 표시서비스 도입을 추진하고 나섰다. 이의 일환으로 연초에는 관련법 개정안이 제출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해가 거의 저물도록 통신비밀보호법의 개정안은 국회에서 계류되면서 1년 가까운 긴 잠만 자고 있다.
올해들어 지난 7월까지 한국통신을 통해 발신 전화번호 확인서비스를 받은 가입자는 8만9373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8만1924명에 비해 10%가량 늘어났다. 최근에는 시인 김지하씨와 언론인 이규행씨, 조계종 분규관련 판결을 내린 이수형 판사가 그들의 사회활동 및 언론 기고문 등과 관련해 정체불명의 전화협박에 시달리고 있다.
이처럼 국회의원들이 법안처리에 뒷전인 채 당리당략을 위해 이전투구를 벌이는 가운데 국민들의 피해는 날로 늘고만 있다. 통신비밀보호법이 해를 넘기지 않고 처리돼 더이상의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바라는 것은 그동안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물론 일반 국민 모두의 바람이다.
정보통신부·최정훈기자 j hchoi@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