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미국 대사관의 "횡포"

기술산업부·김병억기자 bekim@etnews.co.kr

 외국을 방문하려면 반드시 구비해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방문하고자 하는 국가의 대사관에서 발급하는 비자다. 미국 대사관 앞이 연일 인파로 장사진을 이루는 것도 비자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물론 비자를 아무에게나 주지는 않는다. 소득과 가족사항 등 요모조모 따져본 후 비자를 내준다.

 얼마 전 미국에서 열린 「추계 컴덱스」에 참가하려던 중소 전자업체의 일부 관계자들이 이러한 비자 문제로 매우 곤혹스런 일을 겪었다. 비자 발급을 책임지고 있는 미국의 고위 외교관이 소득이 적은 자사 직원의 비자 발급을 거부한 것이다. 소득이 적기 때문에 전시회가 끝나도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비자 발급을 거부당한 곳은 전자산업진흥회라는 공신력 있는 단체에서 주관하고 정부기관에서 참가비를 지원하는 한국공동관에 참가하는 업체였다. 이런 기업의 직원을 소득이 적다는 이유로 비자 발급을 거부한 미국 대사관의 조치는 이해하기 힘들다. 혹시 우리나라를 아직도 미국병에 걸린 후진국의 하나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사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임금이 적은 것은 사실이다. 또 외국 전시회에 참가할 만큼 외국어 실력과 영업력을 갖춘 사람을 보유한 기업도 그리 많지 않다. 따라서 해외전시회에 파견할 인력을 선발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 기업이 가장 우수하다고 선정한 사람이 소득문제로 비자를 받지 못하는 것은 잘못되도 크게 잘못된 것 같다.

 물론 원칙을 지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무릇 외교관이라면 자기가 부임한 나라의 경제나 사회현상부터 파악해야 한다. 미국 대사관에서 비자 발급을 책임지고 있는 외교관이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했다면 과연 이러한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자못 궁금하다.

 더욱이 전시회 참가업체는 적게는 기업을, 크게는 국가를 대표한다. 이런 사람을 쇼핑하기 위해 나들이하는 일반 관광객과 동일한 잣대로 심사한 후 비자 발급 유무를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지금부터라도 미국 대사관의 비자 발급 관행은 바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