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전자부·이일주기자 forextra@etnews.co.kr
국내 부품산업의 대일 종속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70년대 범용부품에 이어 90년대 들어 각광받기 시작한 반도체 등 첨단부품분야에서도 일본이 한국에 지닌 영향력은 막대하다. 핵심기술은 모두 일본업체들로부터 제공받는데다 재료나 부품분야에서의 일본 의존현상은 심각한 수준이다.
이같은 부작용이 최근 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 LCD) 분야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일본업체들이 TFT LCD 모니터의 핵심인 백라이트용 부품을 제대로 공급해주지 않고 있다는 소식이다. 주문량에 턱없이 못미치는 수량을 주고 나머지는 자신들이 완제품 형태로 공급하겠다는 으름장도 예사다. 공급조절을 통해 경쟁자를 견제하는 것은 물론 한걸음 더 나아가 TFT LCD 산업을 주도하겠다는 속셈이다.
이러한 모습은 비단 TFT LCD 분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국에서 가능성이 있는 분야는 어떻게든지 저지하겠다는 인상을 주는 게 일본이다. 방법은 다양하다. 국내 업체들이 간신히 제품을 개발하고 나면 시장을 선점한 일본업체들은 가격을 50% 가까이 내려버린다. 국내 업체들이 이 분야 시장진입 자체가 어렵다고 호소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모든 분야에서 그럴 것이라고 확대해석하자는 것은 아니다. 치열한 경쟁시대에 접어든 기업들의 생존전략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핵심은 우리 내부의 역량이다. 일본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모자란다. 일찍이 부품분야를 육성해 관록과 기술면에서 수년이나 앞선 일본을 따라잡는 게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불가능만을 강조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정보통신·인터넷 등 최첨단산업에 집중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기초가 있는 법이다. 부품은 모든 시스템의 기반으로 불린다. 특히 핵심부품의 경우 시스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수십%에 달한다. 늦더라도 가는 게 좋은지, 늦었다고 포기하는 게 현명한지,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두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