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297)

 한증탕의 TV수상기에서는 그 무렵에 정치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대통령의 단임 문제가 언급되고 있었다. 거리를 메운 데모군중이 잠깐 나온 후에 대통령의 얼굴이 나오자 헤밍웨이가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무엇을 말입니까?』

 그가 무엇을 물었는지 알아차렸으나 나는 시침을 떼고 반문했다.

 『저 사람이 재임할 것으로 보입니까?』

 『저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한국 국민의 대다수가 정치에 관심이 없나요?』

 『그렇지야 않지요. 정치 형태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우리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니까 무관할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그 태도가 결국 군사정권을 오래 끌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였고, 민주주의 발전이 지연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점차 관심을 갖게 되고, 그러한 성숙은 군사정권을 종식시킬 것입니다.』

 헤밍웨이가 어깨를 추썩거리면서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나는 지금도 그때 그가 어깨를 추썩거리면서 웃었던 이유를 모르겠다. 그는 한국 정치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군사정권의 종식이라는 나의 표현이 요원하다는 뜻이었을까. 실제 정권을 잡은 장군출신 대통령이 연임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친한 친구인 장군출신이 대를 이어 정권을 잡았으니 그것은 군사정권의 종식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장군출신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군사정권의 계속이라는 뜻은 아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대통령 가운데 장군출신은 많다. 그러나 그들은 명예롭게 은퇴한 후에 민주주의 형식에 의해서 선출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계속적인 군부의 지지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구별이 될 것이다.

 헤밍웨이와 함께 한증탕에서 한국 정치 현실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두 명의 청년이 탕 안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후에 모스크바에서 일하면서 러시아 국민의 이중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이중성이라는 것은 엄밀하게 따져서 어떤 체제를 불문하고 우리 모두에게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나에게도 있을 것이다. 생존에 대한 본능인지 모른다. 우리는 땀을 흠뻑 빼고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와 샤워를 하는 뒷모습을 보니 그는 항문 쪽에도 붉은 털이 있었다. 몸에 그렇게 털이 많은 사람은 처음 보았는데, 그것은 훗날 그를 연상하면 점잖지 못하게 먼저 떠오르는 상징적인 모습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