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밀레니엄통신 IMT2000 시리즈>2회-진화론 vs 창조론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도 통화가 가능한 꿈의 통신 IMT2000은 전화(電話)인가 아니면 전혀 새로운 멀티미디어 서비스인가.

 오는 2002년 5월 월드컵 경기 개막에 발맞춰 상용화에 돌입하는 IMT2000은 적어도 소비자들에겐 그것이 전화이든 신개념 멀티미디어 서비스이든 아무런 관심이 없다.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컴퓨터라고 해도 좋고 동영상까지 실시간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이동전화라 해도 좋다. 국내는 물론 지구촌 어디에서나 하나의 단말기로 음성전화나 영상전화가 가능하고 이동중에도 인터넷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으면 된다.

 그러나 IMT2000을 기업체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특히 이 사업에 「목숨」을 걸고 있는 기존 이동전화사업자는 물론 21세기 통신시장의 주도권 장악을 노리고 있는 유선계사업자 및 여타 장비업계에 이르기까지 IMT2000 개념 정의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주목되는 것은 이들이 처한 현실과 상황에 따라 IMT2000을 서로 다른 의미로 정의한다는 사실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기존 이동전화에서 진화된 개념으로 평가하는 기업과 전화가 아닌 신개념 멀티미디어서비스라고 주장하는 기업의 두 진영으로 나뉜다는 것이다.

 기존 이동전화사업자들은 한목소리로 「진화론」을 강조하고 유선계사업자 및 비통신사업자들은 「창조론」을 설파하고 있다. 그래서 IMT2000의 개념을 둘러싼 이같은 극단적 시각차는 어디서 비롯됐고 혹시 그 속에 숨은 그림은 없는지를 찾아내는 일은 사업자 선정 못지않게 큰 비중을 갖는다.

 IMT2000의 개념 정리는 사업자 선정방식 및 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다. 이를 전화의 진화 개념으로 보느냐, 아니면 전혀 새로운 멀티미디어서비스로 간주하느냐에 따라 IMT2000 사업자 선정의 큰 틀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IMT2000사업자 선정과 관련, 기득권을 갖고 있다고 자부하는 것은 기존 이동전화사업자들이다. 이들은 IMT2000 사업자 수가 최대 4개를 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지금의 5개 사업자간 경쟁도 힘에 벅찬 판에 유선계사업자들이 진입하고 비통신사업자들까지 이에 가세한다면 경쟁률은 계속 높아질 수밖에 없고 이 경우 누구도 사업권 획득을 장담하지 못한다.

 기득권을 「확보하고 있는」 이동전화사업자들은 이를 최대한 활용, 신규 사업자의 진출을 가능한 억제해야 한다. 우선은 시장을 지키는 것이 급선무이며 이에 성공한 이후 자기들끼리 경쟁해도 늦지 않다고 판단한다. 그래야만 경쟁률도 떨어지고 안정적인 IMT2000 사업권 획득에 한 발 다가설 수 있다는 복안이다.

 이 때문에 사사건건 대립과 트집으로 감정까지 상한 이동전화사업자들이 공동의 이해를 앞세워 사상 유례없는 단합된 목소리로 진화론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IMT2000 서비스는 기존 이동전화망과 연계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실제로 국제표준조차 기존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및 유럽형이동전화(GSM)와의 호환이 가능토록 정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이동전화사업자들은 기술적으로는 셀룰러나 개인휴대통신(PCS)이 2세대 이동전화이며 최근 자신들이 시작한 데이터 전송속도와 크기를 획기적으로 확장한 IS95B서비스는 2.5세대쯤에 해당하고 IMT2000은 제3세대 이동전화라고 밝힌다. IMT2000은 현 이동전화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논리다.

 유선계 사업자와 비통신사업자들은 이동전화사업자들의 정반대편에 대치하고 있다. 이들은 IMT2000이 이동전화이긴 하지만 그 속성은 인류 최초의 휴대형 멀티미디어서비스라며 「진화론」을 단호히 부인하고 「창조론」을 들먹인다.

 하지만 이같은 시각도 따지고 보면 이동전화와 마찬가지로 사업자 선정방식과 숫자를 겨냥한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이들도 IMT2000이 통신시장 구조조정의 완결판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더구나 인터넷에서 보듯 데이터통신이 음성 트래픽을 압도하면서 통신서비스 역무간 장벽이 허물어지고 복합화되는 추세에서 이제는 더 이상 유무선사업자의 경계가 무의미하다고 파악한다.

 이들이 21세기에도 지배적 통신사업자로 살아 남기 위해서는 IMT2000 사업권 획득이 절체절명의 과제이며 이 때문에 자신들의 시장 진입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논리로 발굴한 것이 신개념 멀티미디어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기존 이동전화의 기득권을 한꺼번에 와해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같은 신개념 멀티미디어서비스라는 정의를 확산시키는 일이다. 그래야만 이동전화 5사와 동등한 입장에서 사업권 레이스를 펼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기술적으로 IMT2000이 멀티미디어 서비스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이동전화는 단지 일부분에 불과하며 이미 해외에서도 이동전화의 진화가 아닌 신개념으로 정의한다고 강조한다.

 진화론 진영과 창조론 진영의 다툼은 일종의 제로섬 게임으로 바뀌고 있다. 이동전화사업자들의 논리가 대세가 된다면 유선계사업자와 비통신사업자들은 IMT2000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들러리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반대로 창조론이 설득력을 갖는다면 유선계 및 비사업자들은 이동전화사업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사업자 선정에 막강한 위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키를 쥐고 있는 정보통신부는 아직 이에 대한 대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정부·학계·업계 등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겠다는 모범답안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IMT2000 개념 논쟁은 이동전화사업자들의 방어와 유선계 및 비사업자들의 공세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이택기자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