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299)

 나는 모스크바로 가기 전에 먼저 워싱턴으로 가서 보름 동안 소양교육을 받았다. 당시에 한국에서는 외국에 나가는 관광객에게조차 소양교육이라고 해서 몇 시간의 교육을 시키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것은 외국에 나가서 주의할 점과 특히 북한을 의식한 여러 가지 교육이었다.

 그러나 내가 워싱턴 CIA본부에서 받은 그 교육은 그런 유의 단순한 교육이 아니고, 거의 특수 훈련에 해당하는 정밀하고 첨예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첩보원이 받음직한 권총 사격이나 폭발물 처리 등의 일은 아니었다.

 매일 받는 교육의 과제는 같지 않았으나 나는 아침에 기상을 하면 먼저 조깅을 하였다. 세수를 마치고 나서 잠깐 쉰 다음 식사를 하였다. 그리고 나서 교육이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보름이라는 아주 짧은 시간에 러시아에 대해서 많이 배웠다. 러시아의 과거 역사는 물론이고, 볼셰비키 혁명 이후 공산주의 체제에서 걸어온 혁명 역사도 배웠다.

 그리고 각 서기장들의 정책과 변화를 비롯한 권력의 부침도 알게 되었다. 고르바초프 시대에 와서는 더욱 세밀하게 공부했는데, 내가 머물러야 할 시대의 최고 권력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르바초프를 둘러싼 정치인들과 권력의 실세에 대해서도 들었다.

 KGB 간부를 비롯한 요원들의 얼굴 사진과 신상 명세도 슬라이드를 통해서 보았다. 특히 러시아 주재 미국대사관을 전담하는 KGB의 조직과 그 요원들의 얼굴도 익혔다.

 『만약 당신이 대사관에 들어가면 KGB 요원 가운데 한두 명의 당신 전담반이 생길 것입니다. 당신이 대사관에서 일하는 하급 기술직원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가 누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 요원은 당신을 24시간 감시하고, 항상 보고서를 올립니다. 당신이 만나는 사람, 사는 물건, 가는 장소가 세밀하게 추적될 것입니다. 당신의 잠꼬대조차 체크되어 보고될 만큼 감시를 받을 것인데, 그것은 노골적인 것이 아니고 은밀하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대사관 직원은 누구나 다 그렇게 감시를 받나요?』

 『그렇게 보아야지요. 그것이 바로 첩보니까.』

 『부당하지 않습니까? 공식적으로 항의를 해야 되지 않나요?』

 『글쎄요. 그것은 쌍방간에 피차 마찬가지고, 모두 비공식적이기 때문에 근거가 없어 항의할 수도 없지요.』

 『그건 마치 창살 없는 감옥같군요.』

 『내밀한 것은 피차 알 수 없지요. 표면적인 것을 추적할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