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교육프로그램 가운데는 정신과 의사가 들어와서 정신 감정을 하는 것도 있었다. 그것은 내가 하려는 일이 매우 첨예한 분야여서 나의 정서가 정상인지 확인하려는 의도로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소련이라는 적성국에 가서 내가 혹시 이상한 행동으로 돌변하면 미국 당국에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내가 평소에 지니고 있는 이데올로기라든지, 반미 감정에 대해서도 점검했다.
나는 미국에 대해서 나쁜 감정은 없었다. 그것은 일본에 대한 감정보다 더욱 온화했을 것이다. 그러나 광주항쟁 이후 내 고향의 이웃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태를 알고 미국에 대한 감정이 나빠졌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운동권이 갖는 증오의 감정은 갖지 않았다. 심리학자로 보이는 조교가 나에게 질문을 했다.
『광주사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나는 그것이 민주화를 위한 항쟁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 고향에서 일어난 일인가요?』
『내 고향은 목포지, 광주는 아닙니다만 고향이 어디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지요. 진실이 중요하지요.』
『일부에서는 광주에 한국 진압군이 이동할 때 미국 합참 연합사령관이 허락을 했다는 이유로 광주 진압을 미국이 협조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그 점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나는 미국이 국제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도덕성이 있는 국가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쿠데타를 비롯한 군부의 비인도적인 출동을 묵인한 것은 제국주의적인 발상이라고 봅니다.』
『그것은 묵인이 아니라 내정간섭을 할 수 없어 방관했을 뿐이지요.』
『그 당시 나는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곳 CIA에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사실대로 들었습니다. 이곳에서는 12.12가 일어났을 때 이미 쿠데타로 결정했고, 그 후에 신군부 세력을 지지했던 것입니다. 그 일환으로 광주사태가 일어났을 때 방임한 것이지요. 미국은 자국의 피해가 보일 때는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작전을 펴지만, 자국의 이득이 있을 때는 내정간섭이라는 명목을 내세워 모른 척하는 것입니다.』
『전두환 정권이 미국에 유익했다고 생각합니까?』
『박정희가 민족주의적인 사고방식으로 말을 잘 듣지 않을 무렵에 손쉽게 제거되었고 이제 새로운 신군부가 들어섰지만, 그것은 오히려 길들이기 쉽다는 판단을 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