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밀레니엄 CEO (27)

익사이트앳홈 톰 저몰럭

 94년 어느날 샌드힐가의 KPCB 사무실.

 황금의 손을 지닌 투자가로 불리는 실리콘밸리 최고의 벤처캐피털리스트 존 도어가 톰 저몰럭(43)과 만났다. 두 사람은 인터넷을 발칵 뒤집어놓을 만한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케이블 회선을 이용해 인터넷 접속서비스를 해보자는 것이 이들의 계획이었다.

 전화회사에 의존한 인터넷 서비스는 속도가 느려 네티즌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는 것이 저몰럭의 생각이었다. 미국 가정의 97%가 연결돼 있는 케이블망이 새로운 비즈니스의 기회를 열어줄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도어는 저몰럭의 아이디어를 사업계획서로 만들었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지에서 10년 동안 필명을 날렸던 저명한 언론인 출신으로 넉달 전 KPCB에 합류해 투자자의 길로 들어선 동료 허스트를 CEO로 지목했다. 허스트는 케이블업체를 운영하고 있어서 고속인터넷 사업에는 더없는 적임자였다.

 이렇게 해서 95년 5월 앳홈이 출범했다. 전화선을 이용한 ISP들을 비롯, 웹 TV업체, DSL과 ADSL 접속서비스 업체가 모두 앳홈의 경쟁상대였다. 「케이블 인터넷의 혁명」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앳홈의 전략은 월스트리트 투자가들에게서 환영받았다. 96년 7월 앳홈의 CEO로 취임한 저몰럭은 익사이트를 인수함으로써 회사를 단순한 케이블 인터넷 서비스에서 글로벌 미디어센터로 발전시켰다.

 저몰럭은 알고 보면 「고속도로형」으로 출세가도를 달려온 사업가다. 그는 대기업을 옮겨다니며 몇년 동안 경력을 쌓고 30대 후반에 벤처사장으로 변신해 아무런 어려움 없이 부를 거머쥔 CEO의 모델케이스다. 명문 버지니아 테크 컴퓨터과학과를 졸업한 후 벨연구소에서 잠시 머물다가 HP를 거쳐 실리콘그래픽스로 갔다. SGI에서 설립자 짐 클라크의 눈에 든 저몰럭은 곧 COO 자리에 안착할 수 있었다. 94년 여름 클라크는 신임이 두터웠던 그를 넷스케이프로 데려가려고 했지만 저몰럭은 그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고 앳홈을 선택했다.

 익사이트를 인수한 이후 앳홈은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특히 99년 익사이트 앳홈은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여줬다. 이미 결산이 끝난 3·4분기의 매출은 2·4분기의 2배가 넘었고 신규 가입자 수는 3개월 동안 22만명을 기록했다. 또 컴팩, 델컴퓨터, 시스코 등 IT업계 거인들과 다각적인 업무제휴로 고속인터넷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앞으로 앳홈 이용자들에게 무선인터넷 서비스도 제공할 계획이다.

 100% 자회사인 인라이븐도 얼마전부터 「트루매치」로 주목받고 있다. 자바언어와 매크로미디어의 첨단기술로 개발된 트루매치는 고속인터넷의 특성을 살려 텍스트 대신 오디오·비디오·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멀티미디어를 삽입한 새로운 광고상품이다. 포드, 렉서스, 프록터&갬블, 쇼타임 등 광고주 사이트에서 선보인 트루매치는 익사이트앳홈의 고속 이미지와 맞물려 호평받고 있다.

 톰 저몰럭은 일반 다이얼업 모뎀보다 50배 빠른 인터넷서비스를 지향하는 익사이트 앳홈의 CEO답게 추진력 넘치는 인물이다. 그는 인터넷 고속접속 서비스의 필요성에 대한 설교로 업무시간의 거의 반을 할애할 만큼 정열적인 인터넷 전도사이기도 하다.

 저몰럭은 오늘도 네티즌과 교감할 수 있는 브로드밴드 포털서비스를 목표로 야후와 MSN을 바싹 뒤쫓고 있다. 그는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나 C넷의 할시 마니너, 더블클릭의 케빈 오코너, 야후의 팀 쿠글과 함께 인터넷으로 거부가 된 대표적인 CEO로 손꼽힌다. 취미는 골프이며, 사회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이선기기자 s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