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결함으로 소비자가 피해를 보았을 때 물품 제조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제조물책임(PL)법의 시행시기가 최근 국회 재경위 심의과정에서 오는 2002년 7월로 연기된 것은 한마디로 산업계의 부담을 줄이고 사전에 충분한 준비기간을 주어 이의 시행에 차질이 없도록 하기 위한 배려라는 점에서 일단 환영할 만한 일이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은 물론 중국이나 필리핀 등 후발 개도국에서도 이미 시행하고 있는 제조물책임법의 시행시기를 늦추는 것은 국제화에 역행하는 것으로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일단 국내 산업계의 대응능력을 키우고 사전에 대비태세를 철저히 점검한다는 차원에서 이의 시행시기를 늦춘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만하다.
물론 소비자의 입장에서 볼 때는 소비자의 안전과 제품의 품질을 담보하는 이 법의 도입시기가 앞당겨질수록 좋을 것이다. 소비자보호단체에서 이 법의 조속한 시행을 촉구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소비자보호단체들은 국민의 안전과 우리 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오히려 이의 시행시기를 앞당겨야 한다는 입장이며 이 또한 일리가 있다.
다만 우리가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제조물책임법의 시행시기를 더 늦춰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의 시행시기를 더욱 앞당겨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제조물책임법과 같은 중요한 정책결정이 너무 자주 바뀌는 것이 문제임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시행시기가 너무 자주 바뀜으로써 산업계가 이의 대응태세를 확립하는 데 오히려 혼선을 빚게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연초에 2000년 7월부터의 시행을 목표로 입법화가 추진되던 제조물책임법의 시행시기가 지난 6월 법안의 입법예고를 앞두고 진행되던 관계부처간 논의과정에서 2001년 1월로 확정되는가 했더니, 지난 10월초 관계부처 실무협의회에선 2001년 10월로 연기할 것에 완전 합의, 곧 동 법안을 국회에 상정한다고 했는데 이번 국회 재경위 심의과정에서 또 다시 2002년 7월로 연기되는 등 법안의 시행시기를 놓고 혼선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계에서는 제조물책임법의 조기 도입이 업계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데다 제도적인 준비태세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최소한 3년의 유예기간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 기본입장이다.
그러나 정부가 이미 예고한 대로 오는 2001년 시행이 불가피한 현실로 받아들이고 이의 대비책 강구에 나름대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예를 들어 제품의 안전확보를 위한 지침이나 제품사고 처리에 관한 지침 등 업계 공동의 가이드라인과 시행요령 마련에 전전긍긍해 왔고 관계부처에서는 중소기업이 수출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예기치 않은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지난 4월 제조물책임 보험제도를 개발, 7월부터 시행키로 하는 등 대책을 서둘러 왔는데 이제 와서 또다시 오는 2002년 7월로 연기됨으로써 모두가 허탈해하는 모습이다.
따지고 보면 정부의 정책이 당초 예상대로 추진되지 못한 사례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이같은 현상이 반복될 경우 결국 정부정책의 불신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간과해서는 안될 일이다.
특히 제조물책임법과 같이 산업계에 미칠 파급효과가 큰 중요한 정책결정에 있어 관계부처는 물론 산업계의 의견을 사전에 충분히 수렴, 더이상 혼선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산업계에서도 최소한 2003년에 도입해야 한다는 당초 주장에는 미흡하지만 일단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인 만큼 이의 대비책 강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