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고무줄 컴퓨터값

컴퓨터산업부·양승욱기자 swyang @etnews.co.kr

 컴퓨터의 적정가격은 얼마인가. 원래 가격이란 상품의 교환가치를 의미한다. 이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 결정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컴퓨터의 적정가격을 단 한마디로 표현할 수는 없다. PC의 경우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200만원에서 300만원정도 주면 살 수 있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들은 같은 기능을 갖춘 제품이라면 싸면 쌀수록 좋아한다. 그래서 PC 한대를 사더라도 백화점이나 대리점, 각 유통점을 돌면서 가격을 비교하고 할인율이 가장 높은 곳에서 제품을 구입하게 된다.

 물론 같은 PC라도 유통채널에 따라 그 할인율은 천차만별이다. 일반적으로 정상가격에서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20%정도 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요즘 대형 컴퓨터시장에서 벌어지는 할인경쟁은 이해하기 어렵다. 수억원짜리 대형 컴퓨터의 가격할인율이 70∼80%에 이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실제 공급가격이 정상가격의 20∼30%정도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정도면 컴퓨터시스템 자체적으로도 수지를 맞출 수 있다는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듣노라면 도대체 대형 컴퓨터의 가격이 어떻게 책정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컴퓨터업체들이 다른 경쟁업체에게 빼앗길 수 없는 전략 사이트의 경우에 제품 할인율을 90% 이상으로 높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공짜나 다름없는 「1원」이라는 상징적인 의미의 가격을 제안하는 것도 서슴지 않고 결정할 수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따라서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에 이르는 대형 컴퓨터의 가격은 대부분 「거품」이며 또 공급업체의 전략에 따라 늘였다 줄였다 할 수 있는 「고무줄 가격」인 셈이다.

 국내에 진출한 수많은 외국계 IT업체들이 하드웨어사업 대신 서비스나 솔루션사업으로 앞다퉈 선회하는 것도 이제는 우리 고객들도 현명해져 컴퓨터업체들이 요구하는 만큼의 가격을 지불하지 않음으로써 과거와 같이 엄청난 마진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가격파괴로까지 치닫는 하드웨어시장에서조차 컴퓨터업체들이 마진을 남기고 있다면 눈으로 볼 수 없는 소프트웨어나 서비스 등에서 국내 고객들은 또 얼마나 많은 돈을 지불하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