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대책없나
우리나라 CDMA산업의 위기조짐은 내부적인 인력유출 양상으로만 드러나고 있지 않다. 우리 업체간 과당경쟁은 물론 외국 경쟁업체의 추격과 해당 수출국의 규제분위기 등 뚜렷한 대책이 없는 한 심각한 삼중고를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최대시장인 북미와 중남미지역에서 일고 있는 제살깎아먹기 경쟁이 신규시장인 중국·홍콩 등 동남아의 신규 잠재시장으로 번져나갈 것으로 우려된다. 아직까지 염려없다고 할지는 모른다.
하지만 내수시장 포화로 해외시장으로 진출할 수밖에 없는 국내 업체들에 이러한 현상은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더욱이 일본업체들이 뒤늦게 CDMA기술을 기반으로 이 분야에 대한 기술개발을 본격화하면서 우리 업체들의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조만간 일본이 우리나라 최대의 경쟁국으로 부상하리라는 것이 관련업계의 예상이다.
이러한 가운데 국내 업체들은 중남미시장에서 연초만 해도 200달러선이었던 제품가격이 최근 들어 170달러선까지 떨어지면서 심각한 가격전쟁을 치르고 있다.
모델별로 다르지만 대략 본선인도가격(FOB) 기준으로 단말기당 170달러 전후를 마지노선으로 보고 있는 업체들에 노마진도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아직까지 우리 기업이 주도하고 있는 이 시장에서는 국내에서 생산된 OEM제품을 가져간 외국기업이 저가로 무차별 제품공급에 나선 데 이어 우리 대기업들도 가세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의 후발 CDMA 제조업체들이 급격히 추격해오고 있다.
실제로 도시바 이외에도 NEC·산요·일본전장 등이 우리 업체들을 벤치마킹하면서 해외시장에서 2.5세대, 3세대 단말기 시장을 내다보면서 달려오고 있다. 이들은 아직까지 우리 업체의 그늘에 가려있지만 언제든지 튀어올라 우리 업체를 위협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덴소 같은 회사의 경우 삼성전자가 단말기를 팔고 있는 미국 스프린트사의 브랜드로 해외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고 있기도 하다.
최근 중국시장 진출전망이 밝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자만은 금물이다. 중국의 CDMA 시장개척을 위해서는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중국정부가 자국내 기업육성을 위해 6개 이상의 민간 단말기 제조사업자를 육성하고 있는 데다가 우리 업체들의 중국시장 직수출을 보이지 않게 규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무역장벽인 까다로운 품질규제와 규제장벽이 낮은 중남미의 CDMA시장 활성화를 주도해 온 우리 기업은 이같은 어려움 속에 대비해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우리 기업끼리 제살깎아먹기를 하는 해외시장에서 대책은 없는 것일까.
삼성전자의 경우 최근들어 미래를 위해 투자한다는 차원에서 고도 영업전략을 유지하기로 했다. 저가형 단말기 시장을 잃더라도 당분간 가격을 지키기로 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이상로 이사는 『세트제품 중 이동전화만큼 초기 브랜드 이미지가 중요한 제품은 없다. 메이드인코리아 브랜드가 또다시 싸구려로 전락하도록 놔둘 수는 없지 않느냐』면서 유달리 가격에 집착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현대전자의 관계자들도 『해외에서 일본업체와 부딪히면 특정 지역에서 강한 기업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서로가 선발진출지역에서 상호의 영역을 인정해준다는 얘기다.
이들 업체가 솔직하게 이구동성으로 인정하는 이동전화단말기 수출시장에서의 생존해법은 경쟁사를 인정하면서 스스로 제품이미지를 높여가는 장기적인 마케팅전략인 셈이다.
이재구기자 j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