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322)

 서구의 모든 문화는 폴란드를 거쳐 러시아로 전달되었다. 그런데 폴란드는 문화적으로 프랑스와 인접해 있어 프랑스문화의 영향을 입었다. 특히 언어에 있어 영향을 받았는데, 프랑스어는 한 개의 단어 마지막 음절에 악센트가 오고, 폴란드어는 낱말 두 번째 음절에 악센트가 온다. 그래서 프랑스어를 폴란드어로 직역해도 리듬이 깨지지 않는다. 그러나 러시아 언어는 폴란드어와 달라서 악센트의 위치가 멋대로 이동하기 때문에 프랑스어를 러시아어로 직역하면 엉망이 되어 축사를 읽는 느낌을 준다. 이러한 언어를 푸슈킨이 개량하여 예술성을 갖춘 언어로 발전시켰다. 푸슈킨이 러시아의 시 형식을 완성시킨 것이다.

 우리는 에르미타주 미술관에 도착했다. 그 건물은 제2차대전에 파손이 되었지만 복구하여 새롭게 꾸며놓았다. 미술관 건물은 역대 황제의 거처였던 겨울궁전과 나란히 있었는데, 부속 4개의 건물이 이어져 있었다. 복도로 연결되어 있는 전시실은 1050개였고, 회화와 조각품을 비롯한 전시품은 250만점이었다. 그 전시물을 한꺼번에 전시할 수 없어서 정기적으로 교환하면서 전시하였다.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에 필적하는 미술관이었지만, 관광객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나는 그곳에서 미술 교과서에서 보았던 세계적인 화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었는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마돈나 리타」라는 작품을 비롯하여 엠브란스, 루벤스, 빈센트 반 고흐, 피카소 등의 유명 화가 그림을 보았다.

 그날 오후는 에르미타주 미술관에서 모두 보냈다. 하루 종일 보아도 모두 볼 수 없을 만큼 전시품이 많았다. 그러나 저녁이 되어 그곳을 떠난 우리는 다시 시가지로 들어와서 저녁 식사를 하였다. 구 해군성에는 궁전 광장이 있었는데, 이곳에는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알렉산더 원기둥」과 「승리의 여신상」이 있었다. 그곳에서 알렉산더 네프스키 수도원이 있는 십리길의 거리를 네프스키 대로라고 한다. 그곳이 레닌그라드 중심가였다. 우리는 네프스키 대로의 한곳에 있는 4층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큰 간판도 없이 조그만 석판에 작은 글씨로 「레스토랑」이라고 러시아어와 프랑스어로 쓰여 있었다. 식당의 간판을 너무 작게 해놓았기 때문에 그곳의 지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찾아 들어가기 힘들어 보였다. 이들은 아직도 시장경제의 요령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고, 그것을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건물 안으로 들어간 우리는 다시 돌계단을 딛고 위로 올라갔다. 나타샤의 뒤를 따라가면서 내가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