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329)

 데카브리스트 광장은 1825년 12월에 전제정치와 농노제에 반대하는 청년 귀족들이 모여서 혁명을 시도한 사건이 있는 장소였다. 데카브리스트란 말은 「12월에 혁명을 일으킨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그들을 기념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었다. 나타샤와 나는 그 광장의 남쪽에 있는 이사크 성당으로 갔다.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 성당은 길이가 112m, 폭이 97m, 높이가 102m로 30층 건물과 같은 높이라고 한다. 약 1만4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성당이었다. 한쪽에는 보수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성당 안을 돌아본 후에 보수 작업중인 계단을 밟고 위로 올라가 보았다. 성당을 돌아보고 나오는데 그 앞에 자선모금함 같은 상자를 놓고 앉아 있는 할머니가 보였다.

 『저것은 무엇을 위한 자선모금이지요?』

 나의 질문에 나타샤는 허탈한 웃음소리를 내더니 말했다.

 『자선 모금이 아니라 구걸하는 할머니입니다.』

 『사회주의에서도 구걸을 합니까?』

 『어떤 이유로 돈이 더 필요해서 거리로 나올 수도 있고, 실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연이 있을 수도 있죠. 여기도 거지는 있어요. 그런데 어느 책에서 보니까 거지가 가장 많은 나라가 미국이라면서요?』

 『거지라기보다 부랑자나 건달이라고 할까요. 미국은 복지제도가 잘 되어 있어 실업자일 경우 최소한의 생활을 하도록 해주지요. 그리고 미국 거지는 노동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놀려는 건달의 경우가 많습니다. 최소한 노동을 하면 생활할 수 있는 곳이 미국이죠.』

 나는 미국에 대해서 아주 잘 아는 사람처럼 말했다. 나는 미국인이었다. 언제부터인지 내가 실제 미국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 속에서 행동하고 말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네바강 하구쪽으로 향했다. 눈은 내렸다가 그쳤다 반복하였다. 강폭이 가장 넓어지는 하구에 토끼섬이라는 작은 섬이 있었다. 그곳으로 다리가 이어져 있었지만, 차량은 건너가지 못하게 해서 우리는 차에서 내려 걸어갔다. 여기에 표트르 대제가 스웨덴군으로부터 러시아를 지키기 위해 건설한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가 있었다. 요새 주변에는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성당과 황제가 살았던 표트르 오두막집이 보였다. 성당과 오두막집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이 오두막집에서는 대제가 요새와 궁전 건설이 완성될 때까지 8년 동안 살았다고 하였다. 남아 있는 오두막집은 매우 작았는데, 부근의 부속 건물들은 소실되고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