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330)

 그날 저녁에 나타샤와 나는 레닌그라드 발레단이 하는 공연을 보았다. 러시아에서의 발레는 그 어느 나라보다 뛰어난 느낌이 들었다. 공연을 보고 있는 동안에 나타샤가 나의 손을 꼭 잡았다. 처음에는 무의식적인 동작으로 느껴질 만큼 자연스러웠지만 잡은 손을 놓지 않았고, 손에 땀이 밸 만큼 꼭 쥐었기 때문에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어색하다고 해서 그녀의 손을 빼내는 것은 실례가 될 것같아 나는 마주 잡아 주었다. 그 순간 나는 곤혹스런 느낌을 알았다. 그것은 그녀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녀에 대해서 막연한 호감을 가지고 있는 나의 감정과는 다른 정서였다. 그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적어도 이 여행기간만은 잘 넘겨야 할텐데. 나는 여간 부담이 가지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들이 아이가 아닌 이상 의지에 거슬리는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심했다.

 그러나 발레 구경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을 때, 그리고 그 날이 레닌그라드에서 머무르는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상기하자 미묘한 상념이 일어났다. 백계러시아 사람은 유난히 피부가 하얀 것이 특징이다. 그것은 민족적으로 내려온 유전으로 보였다. 그녀의 하얀 피부는 또 다른 감흥을 준다. 벗은 몸도 하얗겠지 하는 생각을 하자 나는 후끈 달면서 성욕이 일어났다. 그녀를 안고 싶은 욕망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녀를 사랑하든 말든 그 정서와는 별개의 욕심이었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지도 않았으며, 더구나 결혼할 생각은 없었다. 그럴 경우 불장난은 바람직한 것이 못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샤워를 하면서 그 욕망의 찌꺼기를 내버렸다. 뜨거운 물 속에 들어가 그녀의 알몸을 상상하고 공상 속에서 욕망을 발산해버린 것이다. 그렇게 해야 혹시 있을지 모르는 그녀의 유혹을 버티어낼 것이다. 나는 나 스스로 그녀에게 다가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도덕적이라거나 점잖아서가 아니라 소극적인 성격 때문이었다. 나는 그럴만한 용기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다가올 경우 감내할지 의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내 방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어쩌면 홋카이도에서 겪었던 스즈키를 연상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와 같은 달콤한 경험을 하고 싶은 것이 통속적인 일이라는 것은 알지만 나는 완전히 벗어난 평상심을 갖지는 못했다. 나타샤는 스즈키 못지않게 적극적인 성격이기는 했지만, 타월로 몸을 감고 방으로 뛰어드는 여자는 아니었다. 그것은 아무래도 생활 풍습과 연관이 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