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삼성이 잊지 말아야할 사실

디지털경제부·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

 95년 반도체 경기가 최고조에 달해 반도체 업계가 돈벼락을 맞았을 때 삼성의 관심은 온통 자동차였다. 삼성그룹의 숙원사업이 바로 자동차였던데다 반도체에서 엄청난 수익을 올려 자동차사업 추진에 소요되는 충분한 「총알」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외견상 요즘 삼성의 상황을 보면 4년전과 매우 흡사하다. 메모리·휴대폰·통신장비·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 LCD) 등에서 지난해 수조원의 이익을 창출, 투자재원이 넘쳐나고 있는 탓이다. 마음만 먹으면 투자하지 못할 분야가 없는 게 요즘 삼성의 현실이다.

 하지만 자금사정이 4년전과 비슷하다 하더라도 삼성의 관심만큼은 이제 사뭇 달라졌다. 삼성이 전략적으로 투자를 추진하는 분야가 자동차가 아니라 벤처라는 인상이 짙다. 자동차사업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을는지 몰라도 삼성은 최근 벤처투자에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요 계열사를 동원, 지난해말 대형 벤처캐피털인 삼성벤처투자를 출범시킨 것이나 설립된 지 석달도 채 안돼 별다른 외부출자 없이 수천억원대의 벤처펀드를 간단히 조성한 것이 이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11일에는 코스닥의 황제주인 새롬기술이란 벤처기업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 또 한번 벤처업계를 놀라게 했다. 그런가하면 삼성그룹의 핵심 계열사이자 매출액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꼽혔던 삼성물산까지 벤처투자를 21세기 전략사업으로 육성한다고 선언했다.

 삼성의 이런 변화는 벤처가 뉴밀레니엄의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것에 대한 삼성식의 대응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벤처투자의 생명은 연속성이다. 성장 단계별로 지속적이고 계획적인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앞으로의 반도체 경기에 따라 투자의 방향이 달라져선 곤란하다. 『삼성이 90년대말에 자동차사업에 쏟아부었던 자금을 벤처투자로 돌렸다면 정부가 2003년까지 추진중인 2만개 벤처기업 양산은 벌써 해결됐을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최대 국란으로 간주되는 IMF 경제위기의 책임을 상당부분 삼성측에 돌리는 벤처기업인들의 충고는 삼성이 그만큼 우리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동차에서 벤처로 말을 갈아탄 삼성으로선 뼛속 깊숙이 되새겨 볼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