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옆에 서 있는 알렉세이비치로부터 무슨 용지를 전해 받더니 그것을 나에게 내밀었다. 그것을 들고 보니 거기에는 사흘 전에 내가 들어가서 돌아다녔던 KGB 인터넷 통신 체제의 방문 코드 번호였다. 어느 곳에 얼마나 머물다가 간 것인지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이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요?』
『당신이 약 두 시간 동안 돌아다닌 것이 여기 나와 있소.』
『그런 기록은 보이지 않는데요?』
두 시간 동안 인터넷을 헤맨 것은 알 수 있지만 그것을 내가 사용했다는 흔적은 남을 수 없었다. 나는 나의 코드로 사용한 것도 아니고, 그것을 흔적으로 남겨 놓지도 않았다. 그것이 남는다고 해도 모두 파괴되어 인식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다시 나에게 제공한 다른 용지에는 파괴된 인식 번호가 나와 있었고, 암호를 해독한 과정, 보낸 아이디, 파괴시킨 과정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알게 된 일이지만, 컴퓨터에서 파괴된 언어는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그 흔적이 남는다는 사실이었다. 언어의 재생 프로그램을 작동하면 지워진 것도 남는다. 그것이 하드웨어를 포맷한 것도 재생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기계적인 작업으로는 그것 역시 가능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KGB 통신 통제국에서는 모스크바 대학교 대학생 일부에서 번지고 있는 컴퓨터 해커를 잡기 위해 당시 명성을 떨친 해커를 고용해서 일을 시켰다. 나를 잡아낸 자도 바로 그 해커 천재였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잡아떼었다.
『누군가 내 통신 코드를 훔쳐서 당신네 인터넷에 들어간 것 같군요. 나는 모르는 일입니다.』
나는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었다. 해커의 세계에서는 다른 사람의 아이디나 통신 코드를 도용해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믿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이제 그 증거를 잡았다는 표정이었다. 그들의 인터넷에 들어갔다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들어와서 무엇을 했는가가 궁금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의 실체가 무엇인지도 궁금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미국 대사관은 뒷짐을 지고 있지는 않았다. 화급을 요하는 적색 경보를 보냈기 때문에 나를 추적했고, 내가 KGB 본부에 들어가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내가 하는 대화가 모두 녹음되었던 것이다. 미국 대사관에서는 외교 채널로 이 문제를 항의하였고, 이 사실은 서기장 고르바초프까지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