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제냐 심사평가 방식이냐. 사업자 수와 함께 IMT2000 사업권 허가의 핵심인 선정 방식이 초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해 주파수 경매제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정부가 상정했던 전파법 개정안 가운데 국회가 유독 경매관련 조항만을 문제삼아 이 부분을 보류시킴에 따라 IMT2000 사업자 선정은 일단 심사 평가 방식이 유력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사평가 방식이 확실하다는 표현보다 「유력」이라고 토를 다는 것은 주파수 경매제가 현재로서는 도입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언제든지 수면위로 재부상할 수 있는 잠복성 이슈기 때문이다.
사업자 선정이 올 연말에 이뤄진다는 것을 감안, 이를 역산하면 4.13총선을 거치고 새로운 국회가 구성될 경우 이의 전격 도입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시간은 충분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주파수 경매제에 대한 정통부의 집착이 예상외로 강하고 이를 유보시킨 국회 역시 국민 정서를 고려해 「일단 정지」를 선언했지만 제도 도입 취지에는 공감, 추후 논의키로 한다고 밝혀 정국 상황 변화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현안」으로 재등장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IMT2000 사업자를 선정하면서 주파수 경매제를 실시할 것인지 아니면 심사평가 방식을 채택할 것인지는 그간 정부와 업계, 학계의 이해가 모두 엇갈렸던 최대 쟁점이었다.
경매론자들은 사업권 허가의 투명성과 여기서 발생하는 재원을 통한 국가 정보화 추진을 근거로 삼는다.
IMT2000이 현 정부의 최대 이권 사업으로 불릴 정도로 기존 기간통신사업자는 물론 재계의 내일을 가름할 빅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사업권 신청기업은 물론 모든 국민이 그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는 주파수 경매제가 가장 확실하다는 것이다.
또 경매제를 시행한다면 사업권 1개당 적어도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1조원 가량의 자금이 정부에 들어오게 돼 이 같은 막대한 재원을 바탕으로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 등 국가 정보 인프라 투자에 전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는 것도 장점이다.
이와는 달리 심사평가 방식을 선호하는 쪽은 국가 재원인 주파수를 경매로 매각 내지는 민간에 위임하는 것은 정부의 역할을 포기하는 행위라고 맞서 왔다. 특히 한국과 같이 특정 재벌기업에 대한 경제력 편중이 심각한 나라에서 경매제를 실시한다면 또 다시 재벌들의 「돈잔치」가 될 것이 분명하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국가 재원을 배분하는 것은 국민 경제의 발전이라는 거시적 시각에서 접근해야지 투명성만을 앞세운 손쉬운 행정편의주의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투명성도 심사평가 방식을 통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경매제와 심사평가 방식은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논쟁처럼 나름의 논거를 갖춘 채 엎치락 뒤치락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경매제는 정통부의 정책 입안자들이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고 심사평가 방식은 업계의 바람이 묻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경매제를 희망할 것 같은 재벌기업들조차 심사평가제를 주장하는 것이다. 정작 경매가 이뤄질 경우 값이 어디까지 올라갈지 그래서 누가 사업권을 따낼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는 것이 이유로 풀이된다.
IMT2000 사업자 선정과 관련, 정통부 정책진의 최대 고민은 심사 평가에 대한 결과가 투명하고 객관적이라는 점을 과연 누가 믿어 줄 것인지다. 정치적 고려나 로비 없이 아무리 공정하게 사업자를 심사했다하더라도 국민이 의심한다면 허사가 아니냐는 것이다.
여기에는 지난번 개인휴대통신(PCS) 사업자 허가의 교훈이 깔려 있다. 나름대로 공평무사·엄격한 심사를 진행·사업자를 선정했지만 바로 그날부터 특혜시비와 정치권 외압설이 끊이질 않았다.
국정감사와 감사원 감사의 단골 메뉴가 됐고 급기야 정권이 바뀐 후 관련자들이 사법처리되는 「비운」을 맞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정통부 관계자들로서는 「피해가고 싶은」 심정이라는 것이다.
물론 정통부 내에서도 심사평가 방식을 강행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실무자들도 있지만 정작 자신이 사업자 선정 주무 부서 책임자로 거론되는 것에 대해서는 「고사」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그만큼 공무원들의 「피해의식」이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통부가 심사평가 방식을 선택한다해도 실제로는 경매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절충안을 들고 나올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PCS 사업자 선정 때부터 기간통신 역무 허가시 적용하고 있는 출연금의 상한선을 없애는 방식도 대안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심사평가 점수 60%·출연금 점수 40%로 배점을 두고 사실상 출연금 액수를 통해 사업자별 변별력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PCS 사업자 선정 때는 정부가 출연금 상한선과 하한선을 제시했고 모든 참가업체들은 상한액을 써넣어 심사평가 점수에 따라 당락이 결정됐지만 이번에는 거꾸로 가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될 경우 사실상의 주파수 경매제라는 비판에 직면할 공산이 크다. 그래서 정통부 주변에서는 심사평가 방식을 적용하되 출연금 상한액의 기준을 대폭 올려 일정 수준의 변별력을 갖도록 하자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로서는 심사평가 방식으로 가는 것이 대세지만 경매제의 부활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고 심사평가 방식이라 하더라도 출연금 제도를 손질하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점쳐진다.
이택기자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