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발머의 "여유"

서현진 논설위원 jsuh@enews.co.kr

 마이크로소프트의 스티브 발머 사장을 이르는 별명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빌 게이츠의 오른팔」 또는 「제2인자」다.

 스티브는 자신의 보스에 대해 오른팔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를 실천해 보인 인물로도 널리 평가를 받고 있다. 스티브와 빌 사이에는 전혀 맞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찰떡궁합의 호흡이 있고, 아주 다를 것 같으면서도 닮은 꼴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빌과 스티브가 처음 만난 것은 73년 하버드대 1학년때 기숙사에서였다. 동급생인 두 사람은 강의를 빼먹는 데 모두 선수들이었다.

 빌은 기숙사의 새벽 포커판에서 돈따는 재미에 빠져 상대방의 성격과 베팅습관 정보를 종합해 자신의 전략을 수립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천성적으로 사람 사귀는 재간이 있던 스티브는 교내의 여러 동아리 활동에 더 애착을 보였다. 1학년때 이미 미식축구팀의 총무, 학교신문의 광고부장 등을 했을 정도였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은 시험때면 벼락치기로 공부를 해서 학점을 따곤 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것을 똑똑한 사람들의 「여유」라고 믿었다. 누가 더 최소의 시간을 투입해 최고의 학점을 얻는가 경쟁하기도 했다. 젊은 시절의 그들은 그렇게 만나자마자 의기투합했다.

 79년 빌은 프록터앤드갬블사에 다니며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 다니던 스티브를 마이크로소프트에 끌어들이기로 했다. 학업을 마친 뒤에나 생각해 보겠다던 스티브가 주식을 제공하겠다고 하자 두말 없이 응했다.

 빌이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을 위해 하버드를 휴학한 것처럼 스티브 역시 두말 없이 학업을 중단한 것이었다. 두 사람의 성격차에 대한 일화는 이보다 훨씬 사실적이다.

 94년 스티브가 서울의 한 언론사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방문시간은 당초 10분으로 예정돼 있었는데 상대방 언론사 간부가 하버드 유학시절 기숙사의 같은 호실을 사용했다고 하자 스티브는 『그곳에는 뭐가 있었으며 원래는 뭐뭐가 있던 자리』라며 어린애처럼 박장대소하며 좋아했다. 스티브의 수다는 결국 방문 예정시간을 40분 이상 넘겨버렸고 수행진은 최대 고객 가운데 하나였던 S사 대표와의 약속시간을 연기하는 데 곤혹을 치러야 했다.

 96년 역시 빌이 서울을 방문했을 때의 일화다. 한국의 기관·단체 등에서는 그를 단 1분이라도 모셔다 연설을 듣거나 최소한 인사를 나누려는 경쟁이 불을 뿜었다. 이때 한국의 수행진이 사전에 빌의 양해를 얻지 못한 채 한 단체장과 15분간의 면담시간을 주선했다.

 수행진의 생각은 이 단체장의 한국내 영향력을 감안할 때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시차 등으로 몹시 피곤해 있던 빌은 예정에 없던 스케줄이 튀어나오자 불같이 역정을 냈다.

 『나는 영향력 따위는 상관 없소. 중요한 것은 그가 당장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을 단 한개라도 사줄 수 있느냐는 거요!』

 두 사람이 처음으로 충돌한 것은 스티브가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한 지 3주일 만이었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 직원은 30명 정도였는데 당장 50명은 더 고용해야 한다는 스티브의 주장을 사장인 빌이 반대한 것이었다.

 빌은 무리하게 사업을 키우다가 언제 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가급적 안정적이고 소수정예의 회사로 키우겠다는 생각이었다. 적자가 나면 당장 해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스티브는 해고되지 않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사업확장 속도가 스티브가 인재를 발굴하는 속도보다 빨랐기 때문이었다. 이 일이 있은 후 두 사람이 업무적으로 견해차를 보인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이긴 하지만, 오른팔 스티브가 마침내 빌로부터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물려받았다. 주위에서는 철저하게 계산적인 빌이 회장(이사회 의장) 자리를 꿰차고 있는 한 스티브는 만년 2인자에 머물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모나지 않으면서도 예리한 판단력을 가진 스티브의 가능성을 기대하는 쪽도 만만치 않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기업스타일이 「스티브의 그것」을 닮아갈 것이란 예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