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라는 경제 위기를 빠져나온 지 1년도 채 안 되는 시점에서 수입제품의 가전 시장 점유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대우경제연구소의 발표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가전제품이 한때 수출 주도 품목으로 국가경제 발전에 이바지해온 상징적인 제품이라는 점을 제쳐두고라도 대부분 생필품이 돼 있는 제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대우경제연구소가 밝힌 지난해 주요 가전제품의 외산제품 시장점유율은 진공청소기 26.2%, VCR 10.2%, 냉장고 6.2%, 세탁기 2.6%, 컬러TV 2.1%, 에어컨 0.8% 등이다. 청소기와 VCR를 제외하면 그다지 수치가 높지 않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냉장고와 TV 이외의 외산제품들의 시장점유율이 IMF 이전 수준을 넘어섰고 특히 올해 전망치를 보면 냉장고를 제외한 전품목이 IMF 이전보다 크게 높아질 것이라는 예상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외산 가전제품의 국내 시장 점유율이 높아진 데는 나름대로 몇 가지 요인을 들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일본산 제품의 국내 진출의 발을 묶어 놓았던 수입선 다변화 품목 해제다. 지난해 7월 1일부터 25인치 이상 컬러TV와 VCR·오디오 등이 아무런 장벽 없이 국내에서 유통되면서 시장을 잠식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러나 지난해 외산 가전제품의 점유율 상승에 수입선 다변화 해제가 미친 영향은 극히 미미하다고 봐야 한다. 일본업체들의 적극적인 시장공략이 아직 본격화하지 않았고 시장공략이 시작된 제품도 캠코더 등으로 일부 제품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은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국민들의 씀씀이가 상대적으로 커졌다는 점이다. 이런 와중에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금을 모았던 비장함이 사라졌으며 한동안 망국병으로 지목돼온 외제선호 심리가 되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보석류의 수입이 늘어나고 골프채 등 호화 사치품의 수입이 늘어난 것과 외산 가전제품의 수요가 늘어난 것은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할 것이다.
국산 가전제품의 성능이나 품질이 외산제품에 비해 확연히 떨어진다고 볼 수 없다. 일부 제품의 경우 한국형이라는 점에서 외산제품보다 사용이 편리하고 전력소모도 적어 경제적이다. 따라서 외산제품을 구매하는 이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이를 통해 남들과 차별화하겠다는 잘못된 심리에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지난 세기말 2년여 동안 겪었던 시련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2월 금융 위기설이 나돌고 있을 만큼 아직 우리는 경제적으로 안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외산 가전제품 수요 증가를 우려하는 것은 단순히 국산품 애용을 장려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과거의 잘못을 새로 시작하는 세기 초에 다시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다.
가전산업이라는 좁은 울타리에서 볼 때 외산 가전제품의 수입증가에 대응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가전제품 제조업체들의 디자인·성능·품질 개선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러나 가전 시장 현황을 통해 국가경제 전반을 바라보면 지금이 우리 국민 모두가 어려움을 극복할 때 보였던 근검·절약하는 자세를 다시 한 번 가다듬을 때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