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테헤란로로 몰리는 요즘 소프트웨어 벤처기업 K사의 C사장은 테헤란로를 떠났다. 엄밀히 말하자면 자의보다는 타의에 의해 떠나야만 했다. 건물주가 사무실을 비워줄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꼬박꼬박 임대료를 잘 내는데도 비워달라는 건물주의 이유는 엉뚱했다. 『다른 사무실은 그렇지 않은데 유독 당신네 회사 사람들은 밤늦도록 일합니까.』 관리하기 불편하다는 말에 C사장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C사장은 테헤란로에서 조금 떨어졌으나 「심적 거리」는 먼 잠실쪽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이 곳이 편하네요. 직원들이 늦게까지 일해도 뭐라 하는 사람들도 없고요.』
그러면서 그는 조심스레 테헤란로 사람들에 대해 말을 꺼낸다.
『말이 벤처기업이지, 행태는 대기업이 하는 짓과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흥청망청 돈을 쓰는 것을 탓하고 싶지 않아요. 그릇된 사고의 틀이 문제라는 겁니다.』 연구개발은 뒷전인 채 홍보에만 열올리는 사람들, 자기 돈과 노력을 들이지 않고 남의 돈을 끌어들이는 데 골몰하는 사람들, C사장이 바라보는 요즘 테헤란로 사람들이다.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극히 일부예요. 그런데 그 일부가 갈수록 많아지네요.』 C사장은 『초보 벤처기업가보다는 성공한 벤처기업가들에게 더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테헤란로는 갓 나온 벤처기업들이 설 자리가 없다.
『전혀 상관없는 사업에 뛰어들지 않나, 인맥 쌓는 데에만 골몰하지 않나, 온통 신경이 주가에 가 있지 않나. 성공을 발판으로 그 분야에서 한우물을 파는 벤처기업가들을 찾기 어렵네요.』
오해가 있을까 밝혀둔다. 일류 대학과 연구소 출신인 C사장은 벤처사업에 뛰어들어 K사를 업계내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회사로 키웠다.
『테헤란로는 더이상 벤처기업들이 밤새워 연구하며 꿈을 키우는 곳이 아닙니다. 가진 자들의 공간입니다. 이러한 곳을 정부나 언론이 무작정 벤처거리로 부각시키는 게 그리 바람직하게 보이지 않네요.』
C사장의 말은 별 생각없이 테헤란로를 바라봤던 기자의 안일한 인식을 뜨끔하게 만들었다. 테헤란로의 미래를 테헤란로 밖에서 찾지 않도록 테헤란로에 남아있는 벤처기업들의 역할이 커진 것 같다.
<산업전자부·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