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라인>하위문화를 위하여

최근 DDR(Dance Dance Revolution)라는 게임기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N세대에 거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이 게임기의 「게임수칙」을 보면 정말 단순하다. 흘러나오는 빠른 음악에 맞춰 능란하게 발을 놀려대면 그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안면을 몰수하고 몸을 힘차게 움직여야 한다. 중장년층 입장에서 보면 낯뜨겁고 남우세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 게임기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기세다. 또 이 게임기를 개발한 한 업체는 곧 수출전선에도 나선다는 소식이다.

지적 활동에 기초하지 않고 신체적 활동에 기초한 게임기는 또 있다. 예전에 인기를 모았던 「두더지 잡기」 게임기다. 망치를 들고 구멍에서 들락거리는 두더지의 머리를 맞히는 그 게임기는 암울했던 시대를 반영하듯 80년대 게임기 시장을 거의 풍미하다시피 했다. 주먹세기를 측정하는 게임기도 있었던 것 같다. 동그랗게 생긴 샌드백을 힘차게 내리치면 디지털시계를 통해 점수가 쏟아져 나오는 게임이었다. 그 당시의 「쉰세대」들은 젊은이들에게 못된 「주먹자랑」이나 겨루게 한다며 그 게임기의 「탄생」을 못마땅해했지만 「두더지 게임기」만큼이나 인기를 누렸다.

「애마부인」 「어우동」 「매춘」 「서울 무지개」로 상징되는 에로무비는 한때 80년대 극장가를 휩쓸었다. 이들 작품은 낯뜨거운 내용으로 말초신경만 자극한다는 세간의 혹평에도 불구, 엄청난 흥행을 일궈냈다. 특히 「애마부인」은 무려 36만명의 관객을 동원하고 연작 시리즈가 만들어질 만큼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렇다. 한 시대에는 늘 그 시대를 반영한 문화가 존재한다. 문화란 생활의 양식이며 삶의 기준이다. 거기에는 상위문화뿐만 아니라 하위문화도 포함된다. 따라서 그 시대의 문화를 보면 그 시대의 삶이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상위문화만이 존재할 수 없고, 하위문화만으로는 문화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은 어찌보면 상호 보완관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애마부인」으로 상징되는 80년대의 에로영화들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90년대, 아니 2000년대의 우리 영화산업이 과연 존립할 수 있었을까. 80년대 「쉰세대」에게 눈총을 받았던 「두더지 게임기」나 「주먹 세기 게임기」가 없었다면 DDR 게임기가 수출전선에 나서고 게임산업이 산업화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 결론은 「아니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비디오문화의 산실역을 담당해온 비디오대여점이 한때 청소년 탈선의 온상이라는 비난을 산 적이 있다. 그래서 비디오대여점 주인들은 직업란에 자신의 직업을 제대로 적지도 못했다. 극장에서 보면 양화이고 비디오대여점에서 빌려보면 악화가 되는 세상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빼놓고 우리 영화의 르네상스를 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밀레니엄시대의 문화상품은 문화 외적인 요인으로 창작물의 대량 생산을 요구하고 있으며 작품이 아닌 말그대로 「상품」화를 기대하고 있다. 또 효용(Utility)이라는 개념보다는 물질적 만족과 정신적 개념이 동시에 접목되는 향유(Enjoyment)의 가치가 더 중요하게 작용하게 될 게 분명하다. 이는 엘리트주의적 문화로는 경쟁이 더이상 어렵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세계의 문화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다양성이 보장돼야 한다. 상위문화만큼 하위문화에 대한 따뜻한 관심이 필요하다. 낯뜨겁고 남우세스러운 게임기를 품안에 안아야 하고 그토록 지독한 섹스를 그리고 있다는 그 영화도 관객들에게 그대로 보여져야 한다. 특히 문화의 인프라가 태부족한 우리에게 그 문화의 다양성은 최대의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만큼은 하위문화론자들에게 박수를 보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