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업과 다른 자회사에 대한 각 자회사의 태도 역시 변하기 시작했다. 초기에 각 자회사들은 별도의 워크숍을 요구했다. 그러나 디지털 전략팀은 VEBA 전체적인 제휴가 공동의 목표를 얼마나 더 빨리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하는지에 대해 자회사들을 설득했다. 그 결과 뿌리 깊은 조직간의 장벽이 낮아지기 시작했고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여러 자회사간의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모기업의 기획인력이 자회사 활동에 초청돼 보다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게 되면서 조정자와 공동체 건설자로서 모기업의 역할이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다.
하트만이 계획했던 대로 이 같은 발전은 많은 최고경영자들이 미래의 기술계획을 자신들의 프레젠테이션과 안내부스에 포함시킨 1996년 6월 베를린의 「정신회의」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디지털 전략의 개발은 선형활동도 아니고 장기간에 걸쳐 느긋한 사업분석 절차를 거치는 것도 아니다. 또한 가능성의 목록을 모든 사람이 수긍해야 할 하나의 거대한 구상으로 줄이는 것에 관한 것도 더 더욱 아니다. 일단 아이디어 흐름에 물꼬가 트이면 그것은 대개 홍수처럼 터져 나온다. 어떤 아이디어는 발아단계에서 나오는 것도 있지만 다른 것은 임시 해결책으로 제시되었다가 완전히 틀에 잡힌 형태로 나오기도 한다. 아이디어들이 나올 때에는 줄을 세워서 차례를 기다리게 하는 방법론적 사고방식으로 제약해선 안된다. 그래서 혁신 포트폴리오가 있는 것이다.
맥도널드의 경우 공공 네트워크의 진전과 정보의 활용성이 과소 평가되어 왔기 때문에 회사는 독자적 시스템의 가치를 재고할 사설 위성 네트워크의 구축을 미뤄왔던 것이다. VEBA에 있어서는 전자상거래가 모든 자회사에 결정적인 위협인 동시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명백했다. 따라서 초기 디지털전략 프로젝트가 완성되기도 전에 일부 실험들은 착수에 들어갔다. 이러한 조기 결과들은 광산 바닥에 떨어진 금 덩어리와도 같은 것이다.
또 다른 의뢰인은 유망한 기술을 평가했던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면서 이것을 「고통스럽도록 명백한 해결책」이라고 표현했다. 그에 의하면 일단 기업들이 새로운 기술을 만나면 그것이 어떻게 그토록 오랫동안 숨겨져 있었는지 의아해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고통스럽다는 것은 새로운 기술을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그만큼 빨리 새로운 고객 인터페이스를 개발해서 그들에게 새로운 디지털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시에 협력업체들과도 강력한 전자상거래망을 구축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의 의미였다. 기술이 있는 곳에 기회도 있다. 그러나 기획과정과 혁신을 대하는 분위기 때문에 그가 새로운 기술을 만날 기회를 갖기도 전에 그것은 대개 걸러진다는 것이다.
VEBA에 분명한 것은 자회사간에 정보를 교류할 수 있는 메커니즘 구축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그 결과 기업 인트라넷이 서둘러 기획되었고 자회사내에 처음으로 구축되었다. VEBA는 현재 이것을 그룹 전체로 확대하고 있다. 맥도널드의 경우 무엇보다 회사 기술레이더가 취약하다는 사실이 고통스럽도록 명백했으므로 정보시스템 부서는 회사의 고객 서비스 모델에 적합한 방식으로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했다. 그 팀은 「고통스럽도록 명백한 신기술」의 목록을 작성하고 각각에 대해 회사 내부에서 어떤 평가와 실험적인 구상이 진행중인지 점검했다. 어떤 경우에는 추가자원이 투입되었고 회사가 처음으로 기술을 직접 경험하는 경우도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