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상품권 시대다

앨빈 토플러 같은 석학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미래사회는 무현금 신용사회로 가고 있는 듯하다. 현재 현금을 대신할 수 있는 결제수단은 신용카드를 비롯, 상품권·선불카드 등이다. 화폐가 유통되고 있음에도 화폐는 아니면서 화폐의 기능을 대신하는 것들이다. 이 가운데 상품권은 환금성이 거의 없다. 하지만 액면가에 해당하는 상품을 구입할 수 있어 화폐보다 못할 것도 없다. 요즘 상품권이 현금과 신용카드에 이어 「제3의 화폐」로 불리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설을 앞두고 백화점·구두·문화·도서상품권 판매가 급증했다는 소식이다. 설때 청소년들에게 세뱃돈 대신에 문화상품권이나 도서상품권을 준 어른들이 많았다는 게 이를 반증해준다. 명절 선물로 상품권이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음을 대변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상품권이 명절 선물로만 인기 있는 것은 아니다. 졸업·입학, 결혼, 생일 등 각종 기념일 선물로도 각광받고 있다.

이처럼 상품권이 인기를 끄는 것은 선물을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이 모두 상품권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상품권 1장이면 무거운 물건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고 상품권을 받은 사람은 자기에게 꼭 필요한 물품과 시기를 골라 합리적인 소비행위가 가능한 것이다.

이에 따라 요즘 도서와 문화·건강·외식·중소기업·유류·미팅상품권 등 갖가지 상품권이 유통되고 있다. 구두와 백화점 상품권은 어느새 고전이 돼버린 듯하다. 더욱이 지난해 2월부터는 상품권법 폐지로 누구나 상품권을 발행할 수 있게 되면서 갖가지 상품권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히 최근 산업계의 상품권 발행열기는 뜨겁다. 최근 전자제품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가전양판점을 비롯해 홈쇼핑·인터넷업체까지 가세해 관련 상품권을 발행하고 있다.

현재 시중에 등장한 상품권만 모두 2000여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특히 상품권이 부활된 지난 94년 이후 5년 만인 지난해 2조원 규모의 시장을 일구어낸 우리나라 상품권 시장은 올해 경기부양책과 더불어 3조원을 훨씬 웃돌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가히 상품권 전성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품권이 이처럼 봇물을 이루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품권은 선금을 현금으로 받고 발행하므로 기업들로서는 자금조달이 용이하고 발행시점에서부터 실제 상품 교환시기까지 금리이익에다 상품권이 되돌아오지 않으면 이득까지 볼 수 있다. 이러한 손망실 처리분(퇴장률)이 일본에서는 3∼5%나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그 이상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 상품권이 활성화하면 취약상권 보완은 물론 물류비·교통체증 등 이제까지 현금구매의 제약 때문에 발생했던 각종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은 무엇보다도 긍정적인 효과다. 특히 유통·제조업체 모두 수요예측을 할 수 있어 계획생산과 구매가 가능해 안정적인 경영을 펼치는 데 도움을 준다. 한마디로 고객에게는 편리하고 기업에는 이득이 되는 매개수단이 바로 상품권인 셈이다.

이러한 장점 때문에 상품권 발행은 앞으로도 봇물을 이룰 전망이다. 그런 만큼 기업들은 매우 많은 상품권 속에서 치열한 경쟁을 할 것이고 상품권 판촉경쟁을 통해 다양한 마케팅 전략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상품권을 매개로 한 전략적 제휴 등 공생 마케팅도 활성화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편으로 우려되는 점도 있다. 자금구조가 열악한 회사에서는 긴급자금 수혈용으로 악용, 상품권을 마구잡이로 발행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또 상품권에 대한 지급보증제도가 없어져 발행업체가 쓰러질 경우 소비자들은 고스란히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단점도 있다. 상품권으로 누릴 수 있는 혜택만큼 위험이 공존하는 시장경제시대의 한 단면인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지난 75년 상품권이 뇌물로 악용되고 변칙할인 등 부작용을 경계해 발행을 전면 금지했다는 것을 기업들은 간과해서는 안된다. 상품권법 폐지로 상품권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기업·소비자·정부 모두가 합심해서 상품권이 순기능적으로 정착될 때 상품권 시대를 살아가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윤원창 생활전자부장 wcy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