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정보통신 부총리」

박재성 정보통신부장

설과 인터넷은 어떻게 봐도 참으로 어울리지 않을 법한 관계다. 설은 수천년 동안 우리의 귀소본능을 자극하는 그 무엇이 있다. 고향을 향하게 하는 것은 비단 몸뿐만은 아니다. 타향에서라도 설 차례상을 대하면 어느새 마음은 고향으로 치닫는 게 한국인의 정서다. 그래서 설은 다른 명절과 유달리 곰삭은 젓갈처럼 깊은 맛이 있다.

반면 인터넷은 갓 구워낸 빵 같다. 그것에는 젓갈보다는 버터가 제격이다. 그렇듯 설과 인터넷의 관계는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다. 설이 옛것의 대명사라면 인터넷은 새로움의 극단에 서있다.

그러한 부조화스러운 일을 바로 김대중 대통령이 벌였다. 바로 지난 설에 김 대통령이 선물할 설빔을 인터넷을 통해 전자상거래로 장만했다. 인터넷을 통해 설빔을 마련하는 것은 자칫 정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도 있다. 그런데도 김 대통령이 그렇게 한 것은 정보의 생활화를 몸소 실천해 보임으로써 국민의 정보화 마인드를 높이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미 김 대통령은 신년사를 통해 지금보다 1000배 빠른 인터넷 세상을 열겠다고 천명했다. 이같은 점이 아니라도 김 대통령의 정보화 마인드는 상당히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취임하자마자 인터넷의 중요성을 강조해 전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나 미국의 백악관을 움직여 정보통신 인프라를 차질없이 구축해내고 있는 앨 고어 미국 부통령 못지 않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나 산업의 정보화는 그리 원활하게 진행되는 것 같진 않다. 통신사업자들이 경쟁적으로 설비투자를 하는데도 1000만명에 달하는 인터넷 사용자들은 초고속 인터넷이 안된다며 불만이 많다. 정보통신분야가 대부분인 벤처기업을 창업해 본 사람들은 정부의 각종 규제 때문에 두번 다시는 못하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우리 정부가 정보화 마인드는 높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에 대해서는 약한 결과다. 정보화는 말로 중요성을 강조하고 대통령이 전자상거래 시범을 보인다고 해서 잘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보화 선진국들은 올해 들어서도 정보화의 원활한 추진을 강조하는 데 소홀함이 없다.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국정연설을 통해 정보격차 해소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컴퓨터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야 하며 이를 위해 모든 학교와 도서관을 인터넷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도 최근 『인터넷이 창출하는 새로운 경제체제에 적응하기 위해 정부가 개혁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정보화의 성패는 한정될 수밖에 없는 국가 자원을 누가 가장 우선적이며 효율적으로 투입하느냐에 달렸다. 이를 위해서는 정보화 추진을 국가의 최우선과제로 삼아야 한다. 지난번에 단행된 직제개편에서처럼 교육부와 재경부를 부총리 부로 승격시키는 마인드로는 곤란하다. 그러니 우리의 정보화 추진체계는 초점이 없이 겉도는 것이다. 정보화 주무부서가 정보통신부이지만 산업자원부·과기부·문화관광부·중소기업청 등이 모두 관련돼 있다. 그렇게 분산돼 있는 상태에서는 시스템적인 정책이 나오기 어려울 뿐 아니라 설령 나온다고 하더라도 효율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더 힘든 일이다.

미국이 차질 없이 정보화를 추진할 수 있는 것은 초창기부터 백악관 직속으로 정보인프라 추진조직을 갖춘 데 힘입은 바 크다. 이제는 우리도 각 부처에 분산돼 있는 정부의 기능을 조정·기획해 정보화를 체계적으로 추진해야 할 때다. 그러기 위해선 적어도 부총리급의 정부조직이 필요하다. 대통령 직속도 좋고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현재의 주무부서인 정보통신부를 부총리 부로 격상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다.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1일까지 열린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클라우스 슈밥 회장은 『인터넷 혁명이 가속화되는 데 주목하며 정보격차가 심각한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 정보격차의 결과는 개인 차원에서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차이지만 국가적으로는 빈국과 부국의 갈림길이다. 우리가 정보부국으로 가기 위해선 힘있는 정보화 추진체계부터 한시바삐 갖추는 일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