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전자재료산업 중복 과잉 투자 우려된다

원철린 산업전자부장 crwon@etn

불과 1∼2년 전만 해도 기업들의 중복·과잉투자는 IMF의 주범으로 여겨졌다. 정부의 정책은 기업들의 중복·과잉투자를 해소하는 데 역점을 두고 집행됐다.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 최대 수출품목인 반도체도 중복·과잉투자에 시달리면서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빅딜로 온나라가 들썩거리기도 했다.

지금에 와서 반도체산업이 살아나면서 반도체 빅딜이 잘못된 정책결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인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도 있지만 그때만 해도 반도체 빅딜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오히려 반도체 빅딜을 반대하면 역적으로 몰려 주위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 경기가 살아나면서 이같은 분위기도 바뀌어가고 있다.

정부는 업체들의 투자분위기를 살리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으며 업체들의 투자움직임도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일부 분야에서는 중복·과잉투자를 보이고 있다. 인터넷분야가 특히 심한 가운데 최근 정보·전자소재분야에서도 이같은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재벌그룹의 섬유·화학업체들이 앞다퉈 중장기 비전을 발표하면서 정보·전자소재산업에 뛰어든 것이다.

섬유업체인 새한은 앞으로 필터·전지·가공필름 부문을 새로운 전략사업으로 선정, 이들 분야의 사업비중을 14%에서 31%까지 높일 계획이다. LG화학은 오는 2003년까지 정보·전자소재의 매출액 비중을 현재 3%에서 14%로 끌어올리기로 하고 올해 정보·전자소재분야에 1000억원을 투자키로 했다. 제일모직은 오는 2005년에 정보·전자소재산업분야에서 1조원대의 매출액을 올리기로 했으며, SKC는 오는 2003년까지 LCD·PDP 등 정보·전자분야의 매출액 비중을 28%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열악한 국내 전자재료산업분야에서 이들 섬유·화학업체의 투자계획은 일단 반가운 일이다. 반도체가 수출품목 1위이면서 동시에 수입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반도체에 필요한 소재재료분야를 모두 외산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또한 휴대폰 수출도 크게 증가하고 있지만 휴대폰에 들어간 전지 대부분을 일본에서 수입해다 쓰고 있다. 일본과의 무역역조가 해소되지 않는 것도 국내 전자·정보소재산업이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전자·정보소재산업을 육성해야 하는 마당에 대기업들이 진출하는 것은 무척 바람직한 일이다.

더구나 모든 기업들이 인터넷으로 뛰어가고 있는 마당에 오히려 업체들이 취약한 전자·정보산업분야에 뛰어든 점에 대해선 박수를 쳐주고 싶을 정도다. 이 업체들이 뛰어든 분야는 아주 성장성이 유망한 품목이다. 디스플레이소재 시장규모는 앞으로 5년내 전세계적으로 3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2차전지 시장도 올해 국내에서만 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될 정도로 유망한 분야여서 우리 입장에선 놓칠 수 없는 산업이다.

그러나 이 업체들의 진출에 대해 크게 두가지 점에서 마냥 환영할 수만은 없다. 우선 섬유·화학업체들은 이 분야와 무관한 업체여서 기술확보에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대기업 관계자들은 『화학공정의 중간과정 기술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전자·정보소재산업에 뛰어들었다』면서 『기술적으로 전혀 생소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술개발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생소한 전자·정보소재분야의 기술확보가 지난할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의 행태에 미루어 이 업체들은 대부분 해외 선진업체들과 손잡을 것으로 보여 자칫 기술종속을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자·정보소재분야에 뛰어든 업체들의 취약한 기술개발도 문제지만 마케팅력에서도 이 업체들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실제로 이 업체들의 영업력은 대부분 그룹 관계사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다 보니 자생력을 갖추지 못한 대기업들은 중도에 사업을 포기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LG화학은 EMC사업을 중소업체에 매각하기도 했다. 관계사였던 LG반도체가 빅딜됨으로써 납품처를 잃게 되자 결국 사업을 포기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오히려 업체들의 투자가 썩 만족스러운 일은 아니다. 실무자 사이에서는 전자·정보소재분야가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요 없기 때문에 중복·과잉투자가 아니라는 안이한 생각도 없지 않은 듯싶다. 투자계획을 발표한 섬유·화학업체들은 하나같이 2차전지·디스플레이(LCD·PDP)·반도체·기록분야의 소재에 집중돼 있어 중복·과잉투자가 우려되고 있다.

따라서 세트업체들과 섬유·화학업체들이 공동으로 전문업체를 설립하는 것도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벤처기업 육성차원에서 기술력을 갖추고 있는 중소 전문업체에 투자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업체들의 과잉투자가 IMF의 한 요인이 됐던 점에 비추어 볼 때 기술력과 마케팅력이 없는 대기업들의 전자·정보소재산업 진출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