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부품·소재산업 도약의 길

우리나라 전체 수입액에서 부품과 소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해가 거듭될수록 커지고 있다고 한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96년 36.4%이던 부품·소재의 수입 비중이 지난해에는 44.9%로 치솟았다. 더욱이 이를 주도한 품목이 그동안 수출 효자품목으로 각광받아 온 반도체와 휴대폰·액정표시장치(LCD)용이라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반도체의 경우는 지난해 수출액이 203억달러인 데 반해 수입액도 160억달러나 돼 대책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수입 주도 품목으로는 최근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PC용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비롯해 휴대폰용 핵심칩과 2차전지 등 국내 조달이 힘든 것들이 포함돼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소형 모터와 콘덴서 등 나름대로 강점을 가졌던 일반부품 분야의 증가율도 96년 6.3%에서 지난해 9.2%로 껑충 뛰어올라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이는 반도체를 포함한 우리나라 부품·소재산업의 현주소가 어디인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 그동안 주무부처인 산자부가 추진해 온 부품·소재산업 육성방안 등이 별효력을 거두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물론 이를 놓고 당국을 탓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과거 70∼80년대 권위주의 시대에서처럼 정부가 빗장을 걸고 강력한 정책을 추진한다고 해서 국산화율이나 질이 제고될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품질과 물량규모가 맞지 않아 수입품을 찾는다는 세트업체의 항변 역시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채택된 부품이 어떤 것인가보다는 세트업체의 브랜드 이미지를 중시하는 최근 소비자들의 성향을 쫓아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부품·소재산업을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국자의 지적대로 국내 부품·소재산업이 발전하지 못하면 당장 무역흑자 달성에 적지 않은 차질이 생길 것은 뻔한 이치다.

부품·소재의 수입비중이 늘고 일부 관련산업이 위축되고 있는 이유는 1차적으로 우리나라 제조업이 전반적으로 안고 있는 구조적 한계 때문으로 보여진다. 그 한계의 하나는 상호 역할분담에서 「세트-대자본기업」 「부품·소재-중소기업」이라는 등식이 고착돼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세트업계가 일정비율만큼 국산부품을 채용해야 하는 제도가 있었으나 이제는 그마저 없어져 자본과 기술이 취약한 중소 부품·소재업계는 위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당국의 중소기업 지원정책 역시 많은 업체에 조금씩 나누는 식의 실적주의로 흘러 예산은 예산대로 낭비되고 기업은 기업대로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계속돼 왔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정부와 세트업계에 부품 국산화와 함께 품질 제고를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정부는 단 하나라도 글로벌형 부품·소재기업이 탄생할 수 있도록 장래성 있는 소수 정예 기업들을 골라 이들에게 각종 제도와 예산상의 혜택을 주는 집중지원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세트업계 역시 세트-부품업계 공동체 의식 속에서 중소기업을 선별지원함으로써 장기적으로는 과실(果實)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지혜로운 투자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이런 작업들이 하나씩 결과를 거둘 때 비록 시일이 많이 소요된다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의 부품·소재산업이 도약할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