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테헤란밸리와 청와대

지난 16일 햇살이 따사롭게 비치는 백악관. 클린턴 대통령을 비롯해 찰스 왕 CA 사장 등 미 IT업계 내로라하는 거물들과 리노 법무장관, 데일리 상무장관 등 미 정부 고위관료들이 만났다.

한달 전부터 예정된 만남이었지만 이날 대화는 야후와 e베이 등 지구촌을 들썩거린 해킹사건으로 어느 때보다도 따끈따끈(?)했다.

클린턴이 먼저 말문을 연다. 『이번 인터넷 해킹이 사이버 진주만 공격이라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단지 하나의 경종은 되지만.』

그는 웃으며 최근의 인터넷 해킹을 지난 41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2300명 미국인의 생명을 앗아간 진주만 사건에 비유한 것을 가당치 않다고 받아넘긴다.

이어 그는 『인터넷 해킹을 방지하기 위해 첨단 기술보안연구소를 창설하겠다』며 『국회에 즉각 900만달러의 예산을 신청하겠다』고 해 정부의 해킹 발본색원을 약속한다.

찰스 왕 컴퓨터어소시에이츠 CA 사장이 말을 받아 『이번 사건으로 기업의 인터넷사업이 제한을 받아서는 안된다』며 혹 있을지 모르는 정부의 규제 불똥을 경계한다.

HP의 인터넷보안 총매니저 로베르토 메드라노도 『이제는 (해킹을 막기 위한) 행동이 필요한 때지 규제가 필요한 때는 아니다』며 찰스 왕을 거든다.

법무장관 리노는 업계의 규제 우려 목소리를 의식한 듯 『이번 모임의 목적은 인터넷이 개방되고 무료라는 것을 다짐하기 위한 것』이라며 안심시킨다.

상무 장관 데일리도 『규제(인터넷)는 없다』고 리노 장관을 지원사격한다. 이들은 정부와 기업간에 정보공유 필요성이 한층 커졌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며 다음달에 다시 보기로 한다.

이는 세계 최강국의 최고 권부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클린턴은 정례적으로 IT업계 대표들과 만나 그들의 의견을 듣고 있다. 백악관이 실리콘밸리에 활짝 열려 있는 것이다.

우리의 청와대는 어떤가. 테헤란밸리에 얼마만큼 열려 있는가. 디지털강국은 그 문의 열린 정도 만큼 우리에게 다가온다. 저녁9시 TV뉴스 주요기사에 대통령과 대화하며 활짝 웃는 테헤란밸리의 벤처 사장들을 보고 싶다.

<국제부·방은주기자 ejb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