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에 사는 주부 정모씨(38)는 요즘 사이버 주식에 흠뻑 빠져 있다. 욕심만 내지 않는다면 매일매일 반찬 값 정도는 사이버 주식거래를 통해 벌기 때문이다.
그는 남들처럼 PC방에 출근해 단말기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주식을 사고 팔지는 않는다. 남편과 아이들의 출근, 등교가 끝나면 안방의 PC를 켜고 인터넷 증권에 접속한다.
자신이 갖고 있던 주식을 무조건 상한가에 팔자 주문을 내는 것으로 그의 오전 일과는 마감된다. 저녁 찬거리를 구입하러 슈퍼에 갔다와 PC를 확인한다. 거래가 됐다면 그만큼 돈을 챙겨 기쁘고 그렇지 않다면 그대로 기다린다.
그는 코스닥 등록 기업의 주식을 갖고 있어 상한가에 팔리는 일도 많고 기껏 5∼10주의 소액을 거래하기 때문에 위험 부담도 적다. 전업주부인 그가 소일거리로 주식을 시작하면서 경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제는 세상 돌아가는 물정도 어는 정도 알 수 있게 됐다.
그가 결혼 생활 10년만에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뜰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인터넷, 그것도 실시간으로 사이버 주식거래를 가능케 해준 초고속 인터넷 덕분이다.
인터넷이 세상을 바꾼다고 하지만 그 실체를 들여다 보면 바로 속도라는 핵심이 자리잡고 있다. 사실 인터넷은 그간 일부 마니아의 전유물 혹은 기업 영업활동의 일부였다.
구리 전화선을 이용해 접속하던 시절에는 데이터 전송속도가 기껏 14.4Kbps였다. 문자 정보 전달에도 빠듯한 스피드다. 특히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과 횡단보도에서 보행신호를 기다리는 시간을 가장 지루하다고 손꼽는 한국 사람들에겐 통신 속도는 인터넷 대중화의 최대 걸림돌이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 했던가. 하나로통신이 등장하면서 촉발시킨 통신업체들의 속도 경쟁은 지난해부터 기존 전화선보다 수십배 빠른 소위 초고속 인터넷이라는 상품을 탄생 시켰다. 속도는 졸지에 Mbps급으로 올라 갔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상품이 일반 가정에까지 무차별로 공급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방법은 다양하다. 아파트 등 기반시설이 구비되고 인구 밀집 시설의 경우 아예 대용량 초고속 정보전송이 가능한 광케이블을 새로 포설한다.(한국통신, 데이콤, 하나로통신)
기존 가옥은 전국을 거미줄처럼 연결하고 있는 전화선(한국통신, 하나로통신)을 이용하거나 케이블TV망(두루넷) 혹은 중계유선망(드림라인)을 통하기도 한다. 이도 저도 안되면 위성(한국통신)을 동원하기도 한다.
가격도 매우 저렴하다. 워낙 사업자들의 경쟁이 치열하고 시장이 폭발하다보니 한달에 2만∼3만원만 내면 인터넷을 무제한 즐길 수 있다.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밀레니엄 패러다임을 안방에서 향유하면서 삶이 달라지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빛처럼 빠른 초고속 인터넷을 가정에서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됐다(물론 장비 포설 관계로 가입 신청을 한 이후 일정 기간을 기다려야 한다).
실제로 초고속인터넷 가입자는 지난 98년말 5만명에 불과하던 것이 올 1월에는 72만명으로 늘었다. 불과 1년만에 14배 이상 폭발적 성장률을 기록한 것이다. 더욱이 이 수치는 거의 대부분이 가정 가입자들이다.
직장에서 혹은 PC방에서 전용선을 이용해 인터넷에 접속하는 인구가 지난해 1000만명을 돌파했지만 초고속인터넷은 이제 안방을 점령, 가정 문화의 혁명을 이루고 있다.
인터넷은 시장의 크기와 삶의 양태까지 변모시키고 있다. 네트워크의 속성상 일단 인터넷에 들어가면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수요자가 된다. 어마어마한 시장이 새롭게 생겨나는 것이다.
여기에 속도가 덧붙여진다. 시장이 지구 규모로 커진데다 거래 속도가 수십배 빨라지면 그 시장의 크기는 승수 이론으로도 산출이 불가능할 만큼 확장된다.
업계에서는 올 연말이면 우리나라의 인터넷 인구가 2000만명을 돌파, 3000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가정에까지 보급되는 초고속인터넷서비스에 절대적으로 힘입을 것이다.
이런 추세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통신사업자들은 초고속인터넷 상품 세일즈에 총력을 경주하고 있다. 여기서 승리하는 자만이 21세기 통신시장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주부 정모씨는 새천년을 희망과 자신감으로 맞는다. 초고속인터넷이 드디어 정보화의 마지막 개척지 안방을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
<이택기자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