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MBC, SBS 등 방송 3사가 디지털방송 송·중계 시설을 공동으로 이용키로 했다는 보도다. 자원부족이라는 핸디캡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 형편에서 항시 중복투자를 줄이는 것이 선결과제로 지적돼 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들 3사가 시설을 공동으로 이용키로 결정한 것은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디지털방송을 위한 송·중계 시설은 전국적인 송신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어서 많은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특히 디지털 신호는 아날로그 신호에 비해 도달거리가 짧기 때문에 기존 아날로그 송·중계 시설을 디지털로 전환해 사용한다고 해도 별도의 송·중계 시설을 추가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방송 3사는 아날로그방송의 디지털 전환에 총 2조8000억원 정도 들어갈 것으로 예상할 만큼 그 비용은 막대하다. 이 가운데 송·중계 시설이 차지하는 비중이 40% 수준이라고 해도 3사가 각기 시설을 갖출 때 총 비용은 1조원이 넘는다. 디지털방송이 방송 부문의 새로운 혁명을 몰고 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 만큼 송·중계 시설에 대한 공동 이용이 결정되지 않았다면 3사는 각기 전국을 상대로 한 송·중계 설비를 갖추기 위해 최소한 3000억∼4000억원씩의 자금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 결정으로 절반 이하의 비용으로도 방송이 가능하게 됐다.
송·중계 시설 공동 사용은 환경보호 측면에서 국가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도심이나 산악지대 등 고지대에 들어서 도시 미관은 물론 자연 환경을 훼손하게 될 흉물스러운 철탑의 숫자가 그만큼 줄어들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동안 정책적인 잘못에 의해 대규모 중복투자를 유도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산업합리화 조치라는 물리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시행착오를 자주 겪어왔다. 4개나 되는 이동통신 사업자에게 추가로 허가를 내줘 이들이 유사한 서비스에 나서기 위해 각기 1조원 이상의 비용을 투입, 국가경제를 그만큼 위축시키게 했다. 이는 IMT2000 서비스가 이슈가 되면서 업체간 통합이 이뤄져 사업자 스스로 숫자가 많다는 것을 인정하게 만들고 있다. 이밖에도 반도체 산업에 대한 잘못된 정책은 현정부 들어서 반도체산업의 경쟁력 강화라는 명분 아래 업체 통합이라는 무리수를 두게 하기도 했다.
방송이나 정보통신·자동차·반도체산업 등은 국가 기반산업이라고 할 때 중복투자를 사전에 방지하는 것도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인터넷 세상으로 바뀌면서 유사업체나 관련업체들이 합종연횡을 통해 대형화하고 있는 추세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번 방송 3사의 송·중계 시설 공동 이용 결정은 서로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공감대 형성에 의해 만들어진 하나의 변화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경쟁의 개념이 시설같은 유형의 투자가 아닌 콘텐츠로 바뀌었고, 또 경쟁 대상이 나라안 업체가 아닌 나라밖 업체들로 바뀌었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번 결정이 다채널화·다국적화라는 세계적인 방송산업 트렌드에서 국내 방송 3사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는 것처럼 통신·자동차 등 국가 기반산업을 영위하는 업체들의 공조로 연결돼 전반적인 국가 경쟁력을 높여나가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도 인허가 과정에서 중복 투자를 줄이면서도 공정경쟁 체제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중재자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