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6)인텔의 탄생

페어차일드사에서 만족하지 못하던 로버트 노이스는 함께 일하던 엔지니어 고든 무어와 함께 독립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1968년 인텔사를 공동 창업하게 된다.

노이스는 사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쇼클리연구소에서 독립할 때 도움을 주었던 투자가 아서 록을 찾아가게 된다. 노이스는 한 장의 종이에 쓴 사업 계획서를 샌프란시스코에 있던 록에게 보내게 되고, 록은 그 자료를 토대로 30분만에 전화로 500만달러의 자금을 마련해 주었다.

요즈음 벤처 투자가들 사이에서는 이보다 큰 자금 유치가 거의 매시간마다 이루어지고 있지만 당시로는 어마어마한 자금이었다. 록과 노이스의 이상적인 파트너십은 지금까지도 실리콘밸리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기록돼 있다.

노이스와 무어는 곧 젊은 기술자 앤드루 그로브와 힘을 합쳐 우선 반도체 메모리칩 제조사업을 시작했다. 인텔이 첫 수익을 본 사업은 64비트 S램 칩 제작이다. 1969년 말 일본의 부시컴사는 12개의 각각 다른 디자인의 칩 제작을 의뢰해 왔다. 이들 칩은 부시컴사가 생산하고 있던 전자계산기에 들어가 키보드 스캐닝과 디스플레이 등에 이용될 것이었다.

당시의 인텔사은 이 같은 칩을 만들 수 있는 충분한 인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러한 인력을 충분히 대체할 두뇌들은 가지고 있었다. 바로 인텔의 엔지니어인 테드 호프가 이처럼 12가지 기능을 모두 처리할 수 있는 하나의 로직 칩 아이디어를 내놓았던 것이다. 인텔사와 부시컴사는 이 새로운 칩 공동개발에 합의한다.

인텔사는 패데리코 파건에게 새 칩의 디자인을 책임지게 하고 테드 호프와 스탠 메저로 소프트웨어를 제작할 팀을 짜준다. 그리고 9개월 뒤 전세계 IT산업의 지도를 바꿀 혁신적인 제품을 선보이게 된다.

당시 인텔사가 내놓은 칩 4004는 불과 너비 8분의 1인치, 길이 6분의 1인치에 지나지 않았으며 2300개의 금속 산화물 반도체(MOS) 트랜지스터와 맞먹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작은 칩 하나가 당시 3000평방피트를 채우는 1만8000개의 배큐엄 튜브를 필요로 하는 컴퓨터 에니악(ENIAC)과 버금가는 연산처리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새로운 칩은 복잡한 자기코어 메모리 기술을 대체할 수 있는 더 빠르고 값싼 대안이기도 했다.

이 새로운 칩의 가능성을 엿본 인텔사는 4004칩에 대한 저작권과 판매권을 부시컴사로부터 6만달러에 다시 사들인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부시컴사는 한번도 이 새 칩을 이용, 제품을 생산하지 않았고 이듬해 부도를 내고 망하게 된다. 반면 인텔사는 이 칩을 가지고 제조업자들을 교육시키는 과감한 마케팅 전략에 뛰어들어 자신들의 입지를 굳혀 나간다.

그러나 1980년대에 인텔은 일대 위기를 맞게 된다. 일본 제조업자들이 더 효율적인 생산기술과 공격적인 가격 전략으로 무장한 채 미국 전자시장에 진입했던 것이다. 인텔사는 자신들의 주력 제품이었던 메모리칩에 대한 포기와 함께 인원 감축까지 단행하게 된다.

인텔사는 다행스럽게도 그 당시 급속히 성장하는 또 다른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PC에서 사용되는 「프로그램할 수 있는 중앙처리장치(Programmable Central Processing Chips)」인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만드는 일이었다.

IBM은 IBM PC의 초기 모델에 「8088」이라는 하나의 인텔 마이크로프로세서 모델을 선택했다. IBM의 이 같은 구상은 이어 여러 개 IBM 호환 PC제조업체(클론 업체)로 퍼져나가면서 곧바로 업무용 컴퓨팅(Business Computing)의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인텔은 곧 해마다 수천만 개의 마이크로프로세서를 판매하면서 도약에 도약을 거듭, 오늘날에 이르게 됐다. <테리리기자 terry@ibiz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