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임원들이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중반 불기 시작한 벤처 열풍으로 우수 인력이 벤처기업으로 대거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인사철을 앞두고 중간간부마저 잇따라 자리를 비워 「인력 단속」이 임원들의 주된 업무가 되다시피하고 있다.
『그동안 4, 5년차 이하 실무급 사원들이 주류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인사철을 앞두고 중간간부마저 잇따라 자리를 비우고 있습니다. 회사 출근 후 인원 점검이 하루 일과 중 우선 업무의 하나일 정도입니다. 인터넷·전자상거래 등 새로운 비즈니스와 관련한 업무는 하루가 다르게 늘지 이를 책임지고 일할 수 있는 인력은 없지 한마디로 죽을 맛입니다.』
S물산 K상무의 하소연이다. 그는 연구개발과 재무·홍보 등 쉽게 충원이 힘든 전문분야의 인력이 빠져나가 위기감마저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불기 시작한 인터넷붐과 주식시장 열기와 맞물려 대기업의 20∼40% 인력이 벤처기업으로 빠져 나갈 정도로 「인력 엑소더스」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에 대기업도 성과배분제와 스톡옵션제, 프로젝트 계약제와 같은 당근을 주면서 우수인력 챙기기에 적극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별반 효과는 없어 보인다.
대기업 임원들이 의아해하는 것도 여기에 연유한다. 평균치 이상의 보수와 명예를 보장받을 수 있고 과거 상상도 못했던 인센티브제도를 도입해도 이들이 이름도 모르는 벤처행을 택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의 엑소더스를 단지 벤처붐에 편승해 스톡옵션으로 한몫 벌어보자는 사행 심리만으로 해석할 순 없다. 연봉이 대기업에 비해 높지도 않고 스톡옵션이 있다고 하나 2, 3년 후에나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따지자면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오랜 기업 관행에 따른 인사불만, 회사 수익에 근거하지 않은 적절치 못한 보상, 선후배 동료들간 치열한 경쟁 구도 등이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궁극적인 것은 회사의 비전과 성장 가능성 때문이라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돈과 간판만을 보면 사실 대기업을 떠날 수 없겠죠. 문제는 회사의 비전입니다. 인터넷으로 경제와 기업 구조 패러다임이 급격하게 바뀌면서 대기업이 갖고 있던 경쟁력을 이미 잃었다고 생각합니다. 작지만 강한 기업, 그것이 인터넷 시대의 경쟁력 있는 기업이 아닐까요.』
최근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벤처기업을 창업한 K사장의 이유 있는 한마디다.
<인터넷부·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